완천대군파 약사

완천대군


휘는 평(平)이며 도조대왕의 제4남이다. 1322년(충숙왕 9)에 태어났다. 1872년(고종 9)에 대군으로 추봉되고 4세에게도 군으로 습봉되었다.

배위는 군부인(郡夫人) 청주한씨로 형(亨)의 딸인데 1320년(충숙왕 7) 8월 10일에 태어났다.

기일은 2월 4일이다. 묘소는 함경남도 영흥에 있는데 합폄했다.

완천대군은 외아들 흥남군(興南君) 천보(天輔)를 두었다. 흥남군도 외아들 달성군(達城君) 영(英)을 두었고, 이 달성군이 3남을 두니, 계산군(鷄山君) 중손(仲孫) · 계림군(鷄林君) 중신(仲信) · 계성군(鷄城君) 중춘(仲春)이다.

이 세 증손에게서 후손이 퍼져 나갔는데 완천대군이 영흥에 자리 잡은 후로 후손들은 안변(安邊) · 회양(淮陽) · 간성(杆城) · 흡곡( 谷) · 속초(束草) · 고성(高城) 등지로 뻗어나가 살았고, 지금도 간성 근처에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완천대군파는 종원 수도 그리 많지 않고 두드러진 현조(顯祖)들도 없다. 파보를 보면 관직을 지낸 사람이 전부 10여 명에 불과하다.

완천대군의 증손 계산군 중손이 진사로 참봉을 지냈고 그의 아우 계림군 중신이 문과로 이조판서를 지냈다. 계림군의 아들 봉(鳳)은 호조좌랑을 지냈고, 봉의 아들 현동(賢同)이 진사이고, 그 아들 숙문(淑文)이 통훈대부, 숙문의 아들 매( )와 손자 천(天)이 음사(蔭仕)로 참봉을 지냈다.

또 숭정대부(崇政大夫)로 경선(慶善) · 서윤(瑞允) 부자, 가선대부에 재천(在天), 통정대부로 도순(道淳)과 춘익(春益)이 있다.

그리고 호조참판 완급(完汲), 공조참판 만웅(萬雄), 통덕랑(通德郞) 흥산(興算), 장사랑(將仕郞) 광화(光華)가 전부이다.

1995년 강원도 고성군에 사는 원근(源根 : 根守)이 <완천대군파보>를 간행한 바 있다.

완천대군의 아우 완성대군(完城大君)이 경신생(庚申生) 곧 1320년(고려 충숙왕 7) 생이라 하니 형인 완천대군이 지치(至治 : 원나라 영종 연호) 임술년(1322, 고려 충숙왕 9) 생이라 함은 서로 뒤바뀐 것 같다.



종원 분포 상황

합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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