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녕군파 4세 약사에는 총 2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덕성군(德城君) 1430∼1473    파명:함녕군(諴寧君)
  휘는 민(敏), 자는 자눌(子訥), 시호는 이도(夷悼). 함녕군과 군부인 최씨 소생 1남 2녀 중 독자로 태어났다. 1442년(세종 24) 원윤(元尹)에 봉작되고, 1444년(세종 26) 곤의정(坤義正) 명선대부로 진봉되고, 1447년(세종 29)에 덕성군 정의대부로 승작되었다가 1470년(성종 1) 승습(承襲)되어 숭헌대부에 진봉되었다.
 덕성군은 매사에 성실하고 인자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여 성리학에도 능하였고 특히 경사(經史)에 밝아 세조대왕이 <강목(綱目)>을 강하다가 덕성군에게 물으면 척척 대답하였다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병약하여 항상 복약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43세로 별세하였다. 조정에서는 3일간 철조하고 장례에 필요한 물건을 내주어 후량토록 하였다. 그러나 후사가 없어 근령군의 손자이며, 옥산군의 아들인 영인군 순(楯)을 계자로 맞았다가 임영대군의 아들 팔계군 정(淨)을 계자로 맞았다.
 덕성군의 배위는 능성군부인 구씨로 참의를 지낸 신충(信忠)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배위와 함께 모셔져 있다.
팔계군(八溪君) 1445∼1521    파명:함녕군(諴寧君)
  휘는 정(淨), 시호는 정간(貞簡). 임영대군의 4남인데, 1486년(성종 17) 2월 24일 어명으로 덕성군 후사로 입계(入繼)되었으나, 후사가 없어 형 정양군(定陽君)의 3남인 황원정(黃原正)을 후사로 삼았다.
 팔계군은 1505년(연산군 11) 10월 계자 황원정과 함께 연산군의 폭정을 간하다가 먼 곳으로 유배되었다가 1507년(중종 2) 2월 석방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현록대부로 승작되었다. 그러나 1521년(중종 16) 6월 15일에 별세하자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심촌 선영하에 예장했다.
 배위는 파평군부인 윤씨로 파원부원군 여필(汝弼)의 딸과 금산군부인(金山郡夫人) 진주류씨로 사평(司評) 종수(宗秀)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