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령군파 4세 약사에는 총 3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영풍령(永豊令) 1475∼1536    파명:혜령군(惠寧君)
  휘는 송년(松年), 혜령군의 증손이며 축산군의 6남이다. 품계는 창선대부(彰善大夫)에 이르렀다.
예천군(醴泉君) 1422∼1455    파명:혜령군(惠寧君)
  휘는 수(洙), 자는 정원(靜源), 호는 봉천(蓬川), 시호는 소효(昭孝). 혜령군의 장남으로 품계는 정(正)에서 승헌대부(承憲大夫)에 이르렀다. 34세의 짧은 일생 동안 부귀와 명예를 멀리 하고 학문을 닦아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장자지풍(長者之風)이라고 칭했다. 1443년(세종 25) 예천군의 봉작을 받았으며, 그 이듬해에는 승헌대부로 진봉되었다. 예천군이 별세하자 세조대왕은 시호를 `소효\'라 하사했는데 `昭\'는 항시 용모와 태도가 단정하고 공손했음을 의미하며, `孝\'는 부모님을 자혜 애친(慈惠愛親)하는 마음으로 모셨다는 뜻이다.
 배위는 현부인(縣夫人) 원주원씨로 장령 자직(自直)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인좌이며, 배위의 묘도 합폄되었다. 그러나 1994년 4월 혜령군 묘하에 이장하였다.
축산군(竺山君) 1452∼1497    파명:혜령군(惠寧君)
  휘는 효식(孝植), 자는 수실(秀實), 시호는 숙헌(肅憲). 예천군의 장남으로 품계는 부정(副正)에서 정의대부(正義大夫)에 이르렀다.
 배위는 현부인(縣夫人) 청송심씨로 동지중추부사 미(湄)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연천군 선영 계하의 인좌이며 배위의 묘도 합폄되었다. 그러나 1994년 4월 혜령군 묘하에 이장하였다. 대제학 성현(成俔)이 수찬한 묘갈명 끝에 `인우(隣友) 정헌대부(正憲大夫) 한성부 판윤 성현\'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성현과는 매우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던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