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평대군파 4세 약사에는 총 17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무림군(茂林君) 1717∼1784    파명:인평대군(麟平大君)
  휘는 당(塘), 초수는 수이고 현록대부에 봉해졌다.
 묘소는 광주 언주면 완원군묘 아래에 있었으나 포천 인평대군묘 서쪽 제1강에 이장하였다.
 배위는 대구배씨 세홍(世弘)의 딸이며 묘소는 함평 학교 서남리에 있다.
 또한 배위는 평산신씨 수홍(守弘)의 딸과 김해김씨가 있다.
무춘군(茂春君) 1721∼1765    파명:인평대군(麟平大君)
  휘는 육(堉), 초수는 수이고 묘소는 장단 동자원이다. 배위는 전주류씨 창환(昌煥)의 딸이며 묘소는 미상이다.
복녕군(福寧君) 1639∼1670    파명:인평대군(麟平大君)
  휘는 욱(栯), 시호는 효헌(孝獻). 대군의 장남이며 유덕대부(綏德大夫)에 봉해졌다.
 배위는 지평 증 참판 양천허씨 열(悅)의 딸이고 묘소는 대군묘소 동쪽 제2강 임좌이다.
복선군(福善君) 1640∼1680    파명:인평대군(麟平大君)
  휘는 염(쨲), 대군의 3남으로 사은사로 청나라에 내왕하였으며, 1680년(숙종 6)에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복창(福昌) · 복선(福善) · 복평(福平) 등 삼복(三福)으로 불리는 삼형제가 희생되었다.
 횡피죄명으로 복주되었다. 묘소는 광주군 언부면 비정리이었고 1864년(고종 1) 7월에 복관작되었다. 고종태황제의 특명으로 완릉군이 입후되었으며 배위는 군수 임천조씨 시형(時馨)의 딸이다. 묘소 이전은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대군묘소 서쪽 제2강에 이장되었다.
복창군(福昌君) 1641∼1680    파명:인평대군(麟平大君)
  휘는 정(楨), 대군의 2남으로 진하(進賀) 겸 사은정사(謝恩正使)로 청나라에 파견 되었으나 1680년(숙종 6) 남인 일파가 정치적으로 대거 실각하자 서인이 득세를 하게 되므로 1674년(현종 15)에 예론(禮論)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잡은 남인들은 숙종으로부터 그다지 신임을 받지 못하고 있던 차 당시의 영의정 허적(許積)의 유악남용사건(油渥濫用事件)으로 왕은 더욱 남인들을 꺼려하게 되었다.
 이 때 서인 중 김석주 · 김익훈 등이 허적의 서자인 허견(許堅)이 종실인 복창 · 복선 · 복평군 3형제와 같이 역모(逆謀)한다고 고발하여 옥사(獄事)가 일어났다.
 이로 인하여 복창군의 3형제와 허견 · 허적 · 윤휴도 죽음을 당하고 나머지 일파도 옥사(獄死) · 사사(賜死) 파직, 유배되었다.
 이로써 남인들은 큰 타격을 받고 실각하였으며 후에 서인 김수항(金壽恒)은 영의정이 되고 김석주(金錫胄)는 우의정이 되어 정권은 서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1680년(숙종 6)에 횡피죄명(橫被罪名)으로 사사되었고 묘소는 대군묘에서 서쪽 1강에 있다.
 1864년(고종 1) 7월에 복관작위되고 특명으로 완원군의 뒤를 잇게 하였다. 배위는 창원황씨로 군수 도명(道明)의 딸이다.

복평군(福平君) 1648∼1680    파명:인평대군(麟平大君)
  휘는 연(?), 시호는 효익(孝翼). 대군의 4남이며 1872년(고종 9)에 특명으로 인조대왕의 4남 용성대군(龍城大君)의 계자로 출계했다.
 1680년(숙종 6)에 경신대출척 때 별세했으며 묘소는 대군묘소 동쪽 세번째 능선 임좌이다.
 배위는 좌랑 완산최씨 영세(永世)의 딸이며, 묘는 합폄이다.
안계군(安溪君) 1703∼ ?    파명:인평대군(麟平大君)
  휘는 지(콒), 초수는 부수이었으나 군으로 증직되었다.
 묘소는 양주 팔당리이고 배위는 양천허씨 급(級)의 딸로 합폄되었다.
안흥군(安興君) 1693∼1763    파명:인평대군(麟平大君)
  휘는 숙(琡), 시호는 효정(孝靖). 초수는 부정이었다가 후에 흥록대부에 봉해졌다.
 1731년(영조 7)에 상신 홍치중이 임금께 아뢰어 인평대군의 봉사손이 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술좌이다.
 배위는 문화류씨 집(潗)의 딸이고 묘소는 합폄되었다.
양원군(陽原君) 1658∼1724    파명:인평대군(麟平大君)
  휘는 환(煥), 가덕대부에 봉해졌다. 묘소는 경기도 포천군 영평 남산 자좌이다.
 배위는 여흥민씨 판서 취도(就道)의 딸이고 묘는 합폄이다.
 여흥군(驪興君) [ ? ∼1730(영조 6)]
 휘는 해(垓), 유덕대부에 봉해졌다. 영조 때 횡피죄명으로 복주되었다.
 1864년(고종 1) 7월에 복관작되었고 특명으로 종손 병연이 입후되었다.
 묘소는 광주 고읍 자좌이다.
 배위는 진사를 지낸 풍산홍씨 중경(重經)의 딸과 청송심씨 좌량(佐良)의 딸이며 묘는 합폄이다.
여릉군(驪陵君) ? ∼1730    파명:인평대군(麟平大君)
  휘는 기(圻), 품계는 처음에 부정이었고 다음에 가덕대부에 봉해졌다.
 1730년(영조 6)에 횡피죄명으로 복주되었다.
 1864년(고종 1) 7월에 복관작되었고, 묘는 광주 고읍 자좌이다.
 배위는 창녕성씨 항(伉)의 딸과 파평윤씨 이관(以觀)의 딸이며 묘는 합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