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선군파 4세 약사에는 총 7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동평군(東平君) 1660∼1701    파명:숭선군(崇善君)
  아버지 숭선군과 어머니 평산신씨의 장남으로 1660년(현종 1) 4월 8일에 태어났다. 휘는 항(杭), 자는 제보(濟甫), 호는 존오당(存吾堂) 이다.
 처음에는 동평정(東平正)을 제수받았으며 1680년(숙종 6) 21세에 현록대부 보사원종공신
의 녹을 받았으며 1687년(숙종 13) 27세 때에 숙종대왕의 특명으로 혜민서 제조로 임명되어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는 사업에 앞장섰고 특히 문장이 출중하여 인조대왕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趙氏)의 사책관으로 국상 중에 왕후의 행장을 써 뛰어난 문장력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689년(숙종 15) 29세 때부터는 숙종대왕의 각별한 신임을 얻어 중국에 동지사의 정사(正使)로, 사은사(謝恩使)의 정사로 세 차례나 다녀오는 등 사신으로서 막중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 외교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1690년(숙종 16) 1월 6일 숭선군이 돌아가자 동평군은 도성과 멀리 떨어진 공주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받들어 묘역 작업을 하던 중 평소 동평군을 숙종대왕이 편애하는 것을 투기하고 있던 조정 대신들이 이기양(李基陽)을 시켜 가옥 수백호를 철거하고 자신의 아버지 묘를 옮기는 행패를 부린다고 터무니 없는 상소를 하여 작업이 중단되자, 신문고를 울려 숙종대왕께 호소하자 임금은 경조(京兆)에 명하여 낭관(郞官)을 시켜 은밀히 현장에 보내어 조사 보고토록 한 결과 모두 거짓으로 판명되어 이기양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모두 체포하여 귀양을 보내고 숭선군 묘역 일대를 숭선군 가문의 사패지로 하사하여 오늘의 종산으로 보존하게 되었다.
 간신들의 끊임없는 투기와 모함으로 장희빈의 오라비인 장희재(張希載)에게 집에서 부리던 종을 첩으로 보내어 역모를 꾀했다는 터무니 없는 누명을 쓰고 1701년(숙종 27) 11월 8일에 절도(絶島)의 귀양지에서 42세에 사사되었다. 동평군은 시와 글씨에 능하여 중국 진(晉) · 당(唐)의 여러 서체를 두루익혔다. 문집이 종가에 남아있고, 서울특별시 은평구 역촌동에 있는 인조별서비(仁祖別墅碑)는 공의 글씨이다.
 그러나 숙종대왕은 간신들의 성화에 못이겨 사약을 내렸지만 평소 신임하고 아끼던 종숙이라 전례를 깨뜨리고 동평군의 아들인 반양도정과 반릉군에게는 연좌율을 적용하지 말라는 특명을 내려 멸문지화를 면하게 하였다.
 동평군이 사사되자 온갖 정성을 다하여 조성하고 있던 숭선군 묘역 작업이 중단되어 현재도 신도비 비신은 찾을 길 없고 좌대만 있을 뿐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이불자락에 “나는 원통함을 안고 땅속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황천과 일월이 나의 무죄함을 비추어 줄 것이며 후세에 군자가 있으면 이것을 알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이 귀중한 자료는 현재 종가에서 소장하고 있다. 1864년(고종 1) 7월 10일에 신원 복작되었다. 묘소는 선고인 효경공(孝敬公) 묘 계하에 모셔져 있으며 배위는 금성군부인(錦城郡夫人) 나주박씨로 장령 세장(世樟)의 딸이다. 1659년(효종 10) 3월 25일에 태어나 1727년(영조 3) 7월 6일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동평군과 합장하였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반양도정(潘陽都正) 소(炤), 차남은 반릉군(潘陵君) 현(炫), 장녀는 칠원윤씨 경구(敬龜)에게 출가하였다.
반릉군(潘陵君) 1693∼1713    파명:숭선군(崇善君)
  휘는 현(炫)이며 동평군의 차남이다. 부친이 역모사건에 연루됐다는 모함으로 남양(南陽)에 유배되었다가 21세로 세상을 떠났다. 1864년(고종 1) 8월 10일 죄가 씻기고 중의대부(中義大夫) 반릉군(潘陵君)에 추증되었다.
 배위는 김사영(金思永)의 딸로 1694년(숙종 20) 10월 9일 태어나 1733년(영조 9) 5월 20일 4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묘소는 충남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 효경공묘 청룡 임좌에 합장하였다.
 학성군(鶴城君) [1724(경종 4)∼1781(정조 5)]
 휘는 경(坰), 자는 달경(達卿). 반양도정의 계자이다. 생부는 홍서(弘緖)로 익안대군파이다. 5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1864년(고종 1) 8월 4일 중의대부 학성군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의정부시 용현동 산9번지에 예장하였다.
 배위는 현부인 창원유씨로 덕삼(德三)의 딸이며 1726년(영조 2) 6월 20일 태어나 1772년(영조 48) 7월 18일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반양도정(潘陽都正) 1686∼1739    파명:숭선군(崇善君)
  휘는 소(炤)이며 자는 백명(伯明)이다. 1686년(숙종 12) 4월 16일 아버지 동평군과 어머니 나주박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명선대부 반양도정을 제수받았다.
 1739년(영조 15) 5월 11일 5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역모사건에 연루되었다고 모함당하여 유배되었을때 직첩을 빼앗겼다가 1864년(고종 1) 8월 10일에 되돌려 받았다.
 묘소는 충남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에 예장하였다.
 배위는 신부인 울산박씨로 세진(世振)의 딸이며 1689년(숙종 15) 8월 17일 태어나 1751년(영조 27) 12월 15일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묘는 합장하였다.
숭선군(崇善君) 1639∼1690    파명:숭선군(崇善君)
  숭선군은 조선왕조 제16대 인조대왕의 1남이며 귀인 조씨(趙氏)의 소생이다. 휘는 징(?)이며 자는 징지(澄之). 1639년(인조 17)에 태어나 1646년 (인조 24) 8세 때에 영국원종공신(寧國原從功臣)의 녹을 받았으나 1652년(효종 3) 14세 때에 역모에 가담하였다는 무고로 강화 교동(喬桐)에 유배되었다가 홍우원(洪宇遠) · 송시열(宋時烈) · 리경여(李敬與) 등 신하들이 무고함을 상소하여 유배 4년만인 1656년(효종 7) 18세 때에 풀려나 신덕고황후(神德高皇后) 강씨(康氏)의 부태묘사(쯊太廟事)로 모든 종친을 거느리고 예궐하여 세차례나 상소를 올린 끝에 윤허를 받아 역사를 원만히 집행하였다. 1680년(숙종 6) 42세에 현록대부 보사원종공신의 녹을 받았고 1690년(숙종 16) 1월 6일에 52세로 돌아갔다. 숙종대왕은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고 앞으로 3년 동안 상을 마칠 때까지 봉록을 주라는 특명과 아울러 시호를 효경(孝敬)이라 내리었다. 묘는 충남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 산 2-1 종산 해좌에 모셨고, 배위는 영풍군부인 평산신씨인데 아버지는 참판(參判) 증 영의정 익전(翊全)이며 조부는 영의정 문정공 상촌 신흠(申欽)이다. 상촌 신흠은 인조대왕 초기에 영의정을 지낸 유명한 학자로서 선조대왕과 인조대왕의 신임이 두터웠고 선조대왕이 승하할 때 어린 영창대군을 잘 보호하여 달라고 당부한 충신 일곱 사람(遺七臣) 중 한 사람이며 <상촌집(象村集)>이라는 시문집을 남겼으며 종묘 공신당에 배향되어 있다.
배위는 1639년(인조 17) 10월 11일 태어나 1692년(숙종 18) 4월 7일에 54세로 별세했다.숙종대왕이 예장으로 하라고 특명을 내렸는데 예조에서는 전례에 따라 상비와 일꾼만 주자고 청하였으나 다시 하교하기를 “왕자 부인의 장례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 인조조 이후 특별한 교지로 예장을 행하여 오다가 신해년 인흥군 부인이 작고하였을 때 김석주(金錫胄)와 호조판서가 이를 막고 못하게 하여 한 때의 잘못된 예가 되었으나 그런 잘못된 예를 그대로 따를 수 없다. 속히 명령대로 거행하라.”하여 예장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숭선군과 합장하였다.
학양군(鶴陽君) 1708∼1734    파명:숭선군(崇善君)
 학양군(鶴陽君) [1708(숙종 34)∼1734(영조 10)]
 휘는 강(堈), 반릉군의 아들이며 숭선군의 증손이다. 2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864년(고종 1) 8월 4일 중의대부 학양군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화성군 비봉변 상기리 밀양곡 간좌이다.
 배위는 현부인 안동김씨 양호(養浩)의 딸이며 1707년(숙종 33) 1월 9일 태어나 1756년(영조 32) 2월 14일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는 합장하였다.
 
학원군(鶴原君) 1730∼1809    파명:숭선군(崇善君)
  반양도정의 3남이며 동평군의 손자이다. 휘는 양(壤), 자는 재경(載卿)이다. 1809년(순조 9) 12월 3일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1864년(고종 1) 8월 4일 중의대부 학원군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광전리 대산 간좌에 예장하였다.
 배위는 현부인 안동김씨 중겸(重謙)의 딸이다.
학천군(鶴川君) 1725∼1793    파명:숭선군(崇善君)
  휘는 평(坪), 반양도정의 2남이며 숭선군의 증손이다.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1864년(고종 1) 8월 4일 중의대부 학천군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충남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 산1번지 선영 을좌이다. 표석과 상석이 있다.
 배위는 현부인 순창임씨 음참봉 우춘(遇春)의 딸이며, 1724년(경종 4) 9월 10일 태어나 1776년(영조 52) 11월 19일 5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는 합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