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17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규하(奎夏) 1792∼1873    파명:수도군(守道君)
  자는 치현(穉顯), 수도군의 14대손이며 이조참판 의용(義容)의 차남이다.
 1849년(헌종 15) 식년 전시 병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가주서(假注書)를 비롯하여 성균관 전적 · 승문원(承文院) 부정자(副正字) · 홍문관 수찬(修撰) · 부교리 · 교리를 역임하였으며 외직으로 경기도 도사(都事)를 지냈다. 통정대부로 승계하여 돈녕부도정 · 병조참의 · 참지를 여러 차례 제수받고 승진했다. 이윽고 병조참판과 한성부우윤을 끝으로 관직을 물러났다. 향년 82세로 별세하자 조정에서는 국비하사장(國費下賜葬)을 지냈다.
 배위는 정부인(貞夫人) 함양여씨로 의주(宜周)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파주군 천현면 사정동이다.
만근(萬根) 1651∼1708    파명:수도군(守道君)
  자는 자심(子深), 수도군의 10대손으로 순원(舜元)의 차남이다.
 1679년(숙종 5) 식년시 을과에 등과, 정언과 예정(禮正)을 지냈다.
 배위는 진주정씨 진웅(晋雄)의 딸이며 3남을 두었다.
 묘소는 경기도 포천군 소흘읍 무림리 사좌이다.
민화(敏和) 1855∼1925    파명:수도군(守道君)
  호는 노하(鷺下), 초명은 철화(哲和). 선성군의 15대손이며 부친 원상(源祥 : 1821∼1890)은 밀양부사 돈녕부도정이었다. 공은 조선조 광무 연간에 참령(콷領)까지 하며 충주 · 여주 · 이천 · 제천 등지를 관장하고 군부재건에 노력했다. 일진회의 추적을 받으며 명동성당 · 안성 등지로 은신하다가 원주로 와서 여생을 마쳤다.
 아들 응인(應寅 : 1882∼1959)은 종6품 통훈대부 궁내부 주사에 이르렀다. 손자 치중(致中)은 종사에 열의가 많았고 최규하 전 대통령과 내외종간이다.
복휘(福徽) 1717∼1786    파명:수도군(守道君)
  자는 사선(仕善), 수도군의 11대손. 1768년(영조 44) 식년시 병과에 급제, 집의(執義)와 사간(司諫)을 지냈다. 또한 부모께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전한다.
 배위는 숙인(淑人) 창녕조씨로 병사(兵使) 윤성(允成)의 딸과 전주최씨 제태(齊台)의 딸이다.
 묘소는 장단 진북 태성리 자좌에 있다.
삼준(三俊) 1585∼1659    파명:수도군(守道君)
  자는 덕후(德厚), 호는 일사(一퓭). 수도군의 7대손. 1614년(광해군 6) 사마 양시에 급제하고, 1635년(인조 13) 증광시 갑과에 급제, 사예(司藝)를 지냈다.
 배위는 숙인 충주박씨로 문겸(文謙)의 딸이다.
 묘소는 충북 청주시 서당동 분곡 유좌이다.
성시(聖時) 1612∼1680    파명:수도군(守道君)
  자는 여중(汝中), 호는 용복(龍伏). 수도군의 9대손이며 양생(陽生)의 장남이다.
 1646년(인조 24) 식년문과 갑과에 급제, 1651년(효종 2) 예조좌랑이 되고 이어 교리가 되었다. 한번은 홍문관에서 숙직하는데 임금이 환자 한 사람을 데리고 밤에 왔다. 그는 놀라 일어서니 임금은 그에게 사모만 쓰게 하고 앉아서 조용히 이야기하다가 이불이 떨어져 솜이 삐져 나온 것을 보고, “그대가 요직을 지냈으나 청백하고 검소하기가 이러하니 가상한 일이로다.” 하고 내시에 명하여 새 이불을 가져다 덮게 하였다. 그뒤에 효성이 지극한 공은 부모 봉양하기를 청하여 고향의 원이 되었고 경성(鏡城)판관과 진산(珍山) · 예천(醴泉)군수를 역임하였으나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 때 화를 당하여 별세하였다. 후에 효정려(孝旌閭)를 세웠으며 저서로는 <구시급무(救時急務)><천문지(天文誌)><천세일지(千歲日至)><우주총람(宇宙總覽)> 등을 남겼으나 현재 <우주총람> 5권만 전한다.
성익(聖益) 1633∼1670    파명:수도군(守道君)
  자는 백겸(伯謙), 수도군의 9대손이며 양복(陽復)의 아들이다.
 1666년(현종 7) 식년시 을과에 급제, 학유(學諭) · 정자(正字)를 지냈다.
 배위는 전의이씨 수전(壽全)의 딸이다.
 묘소는 경북 상주시 화령면 은산동에 있다.
순악(舜岳) 1632∼ ?    파명:수도군(守道君)
  자는 중거(仲擧), 수도군의 9대손으로 양진(陽進)의 차남이며 순원(舜元)의 동생이다.
 1669년(현종 10) 식년시 을과에 급제, 군수를 지냈다.
 배위는 진주정씨 유양(有陽)의 딸이다.
 묘소는 충북 청주시 오근 원동 해좌이다.
순원(舜元) 1630∼1694    파명:수도군(守道君)
  자는 백거(伯擧), 호는 만각당(晩覺堂). 양진(陽進)의 아들이자 순악(舜岳)의 형. 수도군의 9대손.
 1660년(현종 1) 식년시 병과에 급제, 형조정랑부사를 지냈다.
 배위는 한산이씨 직(稷)의 딸이다.
 묘소는 충북 청주시 오근 원동에 있다.
양복(陽復) 1607∼1650    파명:수도군(守道君)
  자는 복초(復初), 수도군의 8대손. 1635년(인조 13) 증광시 병과에 급제, 병조좌랑을 지냈다.
 배위는 청주한씨 극중(克中)의 딸이다.
 묘소는 경북 상주시 화령(化寧)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