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원대군파 약사

안원대군


목조대왕의 차남이며, 휘는 진(珍), 자는 국서(國瑞),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중국 원나라의 현량과(賢良科)에 급제하여 선무장군(宣武將軍)이 되어, 금주병마도총독(錦州兵馬都總督)을 지냈다.

배위는 부부인(府夫人) 평산신씨(平山申氏)이며 슬하에 2남을 두었다. 장자인 평해군(平海君) 시(施)는 고려조에서 벼슬을 했고, 조선조에서는 종정경(宗正卿)에 추봉되었으며, 부인은 대원한씨(大原韓氏)로서 정부인(貞夫人)에 추봉되었다. 차자인 동해군(東海君) 보하(輔夏)는 1872년(고종 9) 가선대부 종정경에 추봉되었고, 부인은 정부인 여양전씨(驪陽田氏)이다.

대군의 묘소는 원래 경흥군 서쪽 복룡사였으나, 실전되어 영흥군 억기면 미양리 종가 부근에 사당을 세우고, 매년 10월 중정(中丁)에 부부인과 함께 봉사(奉祀)해 왔다. 함경도 경흥, 함주, 회령, 내대, 운전, 송대, 회령, 영흥, 덕원 등지에서 살았으며 1400년 경 3대손인 증손자 동남군 춘흥은 평안북도 정주군 고덕면 일신동 신리로 이주하였다.

이주한 지 7세대가 지나는 동안, 자손이 번창하여, 서로의 가문계통을 분간하기 어렵게 되어, 분파하여 가계를 통괄하기 쉽도록 하였다.

정주(定州)에 정착하고 몇 세대 지나서 서북인에게 과거에 응시할 자격을 허가한 1650년(효종 1)부터 1894년(고종 31)까지 240여 년 동안 많은 재사들이 과거에 응시하여 문과 23명 무과 6명이 급제하여 종2품으로부터 종6품까지의 관직에 62명이 고관대작을 지냈다. 또 효행으로써 7명이 정려를 받았고 10명의 진사도 배출되었다.

현대에도 청렴한 정치가와 현대문학의 대문호(大文豪), 그리고 불교문화를 이끌어 온 고승(高僧)을 배출하였으며, 21세기가 요구하는 과학자와 각 분야의 석학들도 많아 우리나라의 정치 · 경제 · 문화 및 과학의 발전에 기여한 많은 인재를 키워냈다.

대군의 차남인 동해군은 함경도에서 자리를 잡아 후손을 번창시켰는데, <동의보감>과 쌍벽을 이루는 대의서(大醫書)인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의 저자 제마(濟馬)를 탄생시켰다.


종원 분포 상황

지역
세대수
인구수
서울
273
1617
부산
93
466
인천
24
92
대전
21
96
경기
77
320
강원
61
250
경북·경남
65
215
전북·전남
20
85
충북·충남
40
160
제주
11
46
중국
100
400
미국
34
142
일본
10
40
기타
51
200
합계
880
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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