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풍대군파 약사

안풍대군


휘는 정(精)이며 목조대왕의 제3남으로 효공왕후 평창이씨의 소생이다. 관직은 1872년(고종 9)에 가선대부 영종정경에 추봉되었다.

대군은 부왕을 따라 삼척에서 적전(赤田 : 함경남도 덕원, 현재 원산시에 편입)으로 이거 하였다.

당시 관북지방의 동북면에는 원나라 세력이 크게 뻗쳐 있었고 여진족 등 호족이 도 처에 침입 출몰하여 양민에 대한 약탈과 도륙이 심하였다. 공은 이들의 만행을 물리치고 양 민을 보호하여야 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결연히 적전을 떠나 영흥 · 함흥지방의 양민을 구 출한 후 북진을 계속하여 호족들을 몰아내면서 그들의 옛 땅인 만주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함경북도 경흥까지 이르렀다.

그곳에서 승하한 부왕을 따라 필생의 포덕집의(布德執義)의 대 업을 보필하였다. 대군도 경흥에서 돌아갔으나 묘소는 실전되었다. 대군의 후손들이 함흥 주 남 후농(州南 厚農 : 현 흥남시 유정리)에 신도비를 세워 세사(歲祀)를 받들고 그 유덕을 기 려 왔다. 대군은 동원군(東原君) · 동흥군(東興君) ·동평군(東坪君)의 3남을 두었고 대군 의 3대손까지는 경흥에서 살았으나 4대손부터는 함흥땅에 이거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안풍대군 파종회는 화수계(花樹契)라는 형식으로 오래 전부터 많은 일을 해왔다. 대군의 신도비를 세우고 조상들의 묘단을 정제하여 매년 음력 9월 보름날에 세사를 규모 있게 행하여 왔다. 1922년에는 대군파 족보인<임술보(壬戌譜)>를 간행하였다. 그러나 8·15광복 이후 북한이 공산화되자 대군의 후손들은 남북으로 유리되어, 그 규모가 컸었던 화수계 조직은 하루 아침에 무너져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월남한 대군의 후손들 중 동흥군(東興君)지파가 1978년 <동흥군지파보>를 증수(增修) 발행하고 동흥군지파 종친회 를 결성하였다. 그리하여 동흥군지파 종친회가 펼친 종친찾기 광고 등으로 2백여 가구의 동 원군지파 파족(派族)도 찾아내게 됨에 따라 1982년 4월 11일 처음으로 상선(相鮮) 종현이 주도하여 서울에서 안풍대군 파종회를 결성하고 종약원에 등록을 마쳤다.

종원 분포 상황

1922년에 발행한 안풍대군파보인<임술보>에 의하면 그 당시 7천여 명의 종원이 등재하여 있었고 함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산재 거주하고 있었으며 극소수의 종원이 북쪽으로는 청 진(淸津) 초산(楚山), 서쪽으로는 영변(寧邊), 남쪽으로는 양구(楊口) · 보령(保寧) · 광주 (廣州) 등지에 살고 있었다. 현재 남한에는 약 8백명이 주로 부산 · 서울에 살고 있다.

파종회 연락처

대 표 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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