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천군파 약사

장천군


장천군파 정종대왕의 13남이며 휘는 보생(普生)이시다. 조선을 건국하고 맨 먼저 양위한 상왕을 받들어 충효를 다하다가 1465년3월15일 별세하셨다. 고종조에 봉군되어 영종정경부사를 추증받고 공소(恭昭)라고 시호도 받았다.

배위 신부인(慎夫人)화순최씨는 도사(都事)자해(自海)의 딸로 산양군부인(山陽郡夫人)에 봉해지고 부조묘의 은명(恩命)을 받았다.

공은 한성 소격서동에 한거하였으며 동소문 외 삼양동(三陽洞)에 예장되었다가 도시확장으로 1971년에 전북 고창군 성내면 신성리56-1번지(칠성동) 묘좌(卯坐)로 이봉하였으며, 후손들의 집성촌 이루었다.

부림군(缶林君) 형(炯)과 악양부정(岳陽部正) 혼과 진안부정(眞安副正) 요(耀)와 삼양부정(三陽副正)석동(石童)은 공의 네 아들이다.

부림도정의 계자(繼子)는 화산군(花山君) 팽년(彭年)으로 생부는 악양부정이다. 화산군은 3남을 두었는데 옥야군(沃野君) 구복(龜福) 옥천령(沃川令) 구천(龜千) 덕성령(德城令) 구정(龜禎)이다. 장남 옥야군의 아들 정략장군(政略將軍) 현(玹)과 차남 병조정랑(兵曹正郞) 위(瑋), 3남 병절교위 수(琇), 4남 당(璫)이신데 장남과 3남은 고창으로 낙향하였다. 차남 옥천령의 아들 사직(司直) 경(璟)은 황해도 평산으로, 직장(直長) 순(珣)은 충청도 보은으로 각각 낙향하였다. 직장(直長) 순(珣)은 종제(從第) 병조정랑 위(瑋)의 차남 흥문(興文)을 후사(後嗣)로 하였다.

악양부정의 장남은 보령수(保寧守) 팽조(彭祖)요, 차남은 화산군(花山君) 팽년(彭年)인데 출계하여 백부 부림도정의 뒤를 이었다. 보령수의 아들 추계부수(秋溪副守) 구수(龜壽)와 흥암부수(興巖副守) 구년(龜年)의 후손은 경기도 양주와 파주에 세거(世居)한다.

진안부정 장남은 덕인수(德仁守) 복정(福禎)이요, 차남은 여성수(驪城守) 미수(眉壽)인데, 덕인수는 후사가 없고 여성수의 아들은 운산부수(雲山副守) 천년(千年)이다.

삼양부정의 장남은 진천군(晉川君) 은동(殷同, 차남은 진산군(晉山君) 세영(世榮) 3남은 진원군(晉原君) 신충(信忠)이다. 진천군은 완천군(完川君) 경조(景祖)를 뒤었고 진산군은 완영군(完永君) 경복(景福)을 두었다. 진원군은 해완군(海完君) 용돈(龍頓)과 해릉군(海陵君) 용권(龍權)을 두었는데 해완군의 후손은 서울에 세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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