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령대군파 약사

효령대군


태종대왕의 둘째 아들로 양녕대군의 아우이고 세종대왕의 형이다. 처음 휘는 호(祜)이고 19세에 보(補)로 고쳤다. 자는 선숙(善叔), 호는 연강(蓮江), 시호는 정효(靖孝)이다. 12세에 해주정씨를 부인으로 맞이하였고 17세에 효령대군으로 봉해졌다. 글 읽기를 좋아하여 30세 전에 이미 학문과 덕성을 이룩하였고 명필이었다. 활쏘기에 능숙하였고 효성이 지극하여 부왕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다.

불교를 독실히 믿어 조정의 숭유억불 정책하에서 불교 보호의 방패 역할을 감당하였다. 원각사 창건 때에는 조성도감 도제조를 맡았다. 이 때 주조되어 1985년까지 보신각에 달려 있던 큰종과 탑골공원의 10층 석탑은 그 제조기법이나 예술성이 뛰어났다. 10층 석탑은 국보 제2호로, 원각사지 대종은 보물 제2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다.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반야심경>, <능엄경>, <선종영가집> 등 불경의 번역과 교정에도 힘썼고, 많은 사찰을 순회하면서 신도들을 온후하게 계도하였다. 그리고 향촌의 자치규약인 향헌(鄕憲) 56조를 지어 백성들의 윤리 도덕심을 함양하였으며 유불심법동일원(儒佛心法同一原)의 이념을 추구하였다.

이렇듯 효령대군은 조선조 개국 초기의 정치 사회적 전환기에 왕정을 굳건히 하기 위해 직접 계도와 행동으로 보필하였으며, 성종조까지 아홉 조정을 내리 섬기면서 왕실의 어른으로서 대접을 받았다.

1396년(태조 5)에 태어나 91세의 천수를 누리고 1486년(성종 17) 5월 11일에 별세하여 서초구 방배동에 예장되었다. 7남을 두었으며 여섯째 아들 원천군(原川君)을 아우 성녕대군에게 출계시켰으며 손자 33인, 증손자 109인으로 후손이 번성하였다.

서울특별시는 1984년 11월 7일 청권사 앞길을 `효령로'로 명명하였다.

- 효령대군 연보
▲1396년(태조 5) : 송경(松京 : 개성) 정안군궁(靖安君宮)에서 태종대왕의 제2왕자로 태어남.
▲1400년(정종 2) 5세 : 입학함.
▲1407년(태종 7) 12세 : 효령군 작위를 받음, 해주정씨를 부인으로 맞음.
▲1408년(태종 8) 13세 : 연비어약(鳶飛魚躍) · 용반호거(龍盤虎踞) 등 4자 명구 24자를 씀.
▲1409년(태종 9) 14세 : 선소오매패(宣召烏梅牌 : 왕궁출입증표)를 하사받음.
▲1412년(태종 12) 17세 : 효령대군으로 진봉됨. 평강(平康) 강무(講武) 때 뛰어난 활 솜씨를 보임.
▲1414년(태종 14) 19세 : 휘 호(祜)를 보(補)로 고침.
▲1417년(태종 17) 22세 : 품계가 대광보국에, 부인은 숙의옹주에서 삼한국대부인에 각각 개봉됨.
▲1418년(태종 18) 23세 : 충녕대군에게 성덕이 있음을 알고 재덕과 학문을 숨기고 가부좌로 합장(合掌)하며 임금자리를 손양함.
▲1419년(세종 1) 24세 : 양녕대군 · 하륜 · 박 언과 함께 명신에 녹선됨.
▲1420년(세종 2) 25세 : 7월 10일 모후 원경왕후 승하.
▲1422년(세종 4) 27세 : 5월 10일 부왕 태종대왕 승하.
▲1423년(세종 5) 28세 : 명 황제 사신 영접연에서 효령대군이 세종대왕에게 술잔을 드릴 때 세종대왕이 일어서자 사신이 그 이유를 물었다. 황희가 이에 “군신의 분수가 엄하나 형제간의 떳떳한 예를 행함이다.”라고 대답하자 사신이 감탄하였음.
▲1424년(세종 6) 29세 : 서강(西江 : 한강)에 합강정(合江亭)을 세움.
▲1425년(세종 7) 30세 : 5월 13일 세종대왕이 합강정에 거둥, 단비가 오자 정자 이름을 `희우정(喜雨亭)'이라 고쳐 줌.
▲1428년(세종 10) 33세 : 선원전에 수용(첱容) 및 선원록(璿源錄)을 봉안하고 윤 12월 문소전(文昭殿) 친제(親祭) 때 종헌관으로 헌작함.
▲1429년(세종 11) 34세 : 관악사(관악산 연주암)를 삼창(三創)하고 약사여래상 · 미륵존상 및 5층 석탑을 조성함.
▲1430년(세종 12) 35세 : 월출산 무위사 중창을 지유(指諭)하고 만덕산 백련사 중창에 대 공덕주가 됨.
▲1432년(세종 14) 37세 : 2월 한강에서 7일간 수륙재(水陵齋)를 거행함. 부인의 작호가 삼한국대부인에서 예성부부인으로 개봉됨.
▲1434년(세종 16) 39세 : 회암사를 중수하고 원각경을 설법함. 연방축동(蓮坊築洞)의 연(蓮) 자를 따서 `연강(蓮江)'이라고 작호함.
▲1435년(세종 17) 40세 : 5월 흥천사 탑전의 보수를 주장함.
▲1438년(세종 20) 42세 전후 : <부모은중경> · <장수태골경> 합부를 사경, 천안 광덕사의 대시주가 됨. 효령대군의 환후가 쾌차되자 세종대왕이 축하 겸 위로연을 베풀 때 대군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옷깃을 적시니 대군도 같이 눈물을 흘리고 한밤중에 환궁함.
▲1440년(세종 22) 45세 : 흥천사에서 경찬회(慶讚會)를 주관함.
▲1449년(세종 31) 54세 : 12월 속리산에서 복천사 중수보권문을 반포함.
▲1450년(세종 32) 55세 : 2월 세종대왕 승하.
▲1452년(단종 즉위) 57세 : 용문산 상원사 범종의 주조를 주장함. 문종대왕 승하.
▲1454년(단종 2) 59세 : 3월 곡성 태안사 대발(大鉢 : 바라)을 개조하고 태안사의 대 공덕주가 됨.[대발은 1447년(세종 29)에 대군이 조성]
▲1457년(세조 3) 62세 : 2월 정암산 법천사의 불상조성을 권선함.
▲1458년(세조 4) 63세 : 4월 8일 교지를 받아들여 태조고황제가 1398년(태조 7)에 지은 함흥선향헌목의 서문을 지음.
▲1461년(세조 7) 66세 : 천안 광덕사에 주석할 때 석가여래 사리가 분신하고 상서로운 일이 일어나 분신사리 25과를 세조대왕에게 진상함. 흥천사 대종 주조 도제조가 되어 감동(監董)함.
▲1462년(세조 8) 67세 : 3월 부안 변산 실상사 삼존불 조성을 권선함. 10월 세조대왕과 같이 대군의 농장(農莊)에 이른 후 미지산(지금의 용문산) 상원사(대군 원찰)에 거둥했을 때 상서로운 기가 발하고 관음상이 현신(顯身)함.
▲1463년(세조 9) 68세 : 가을 <법화경>을 언해하고 내불당(內佛堂)에서 10일간 교정봄.
▲1464년(세조 10) 69세 : <선종영가집>을 언해 및 수교함.
▲1464년(세조 10) 69세 : 2월 28일 어가를 따라 속리산 복천사에 행사(行祀). 5월 회암사에서 원각경 설법시 부처님 형상이 나타나고 감로 등 기현상이 일어났으며 사리가 분신되어 사리를 함원전(含元殿)에 공양함. 원각사 조성도감 도제조가 됨.
▲1465년(세조 11) 70세 : 신미(信眉)대사 · 한계희와 같이 <원각경>을 언해 및 교정함.
▲1466년(세조 12) 71세 : 원각사 낙성회에 매월당 김시습을 부름. 3월 21일 금강산 표훈사에서 수륙재를 올릴 때 사리와 서기 · 상운 등 기현상이 일어남. 원각사 대종의 주조를 주장함.
▲1469년(예종 1) 74세 : 함흥에 가서 향헌법 56조를 만들고 상행케 함. 완주군 화암사의 <십왕경> 간행에 보시함.
▲1470년(성종 1) 75세 : 8월 예성부부인 정씨가 별세함.
▲1476년(성종 7) 81세 : 3월 9일 성종대왕으로부터 위로연과 폐백을 하사받음. (그 후 83세 3월 12일과 85세 1월에도 성종대왕의 위로연이 있었음) 5월 종친의 가계(加階) 및 승품법(陞品法)을 건의함.
▲1482년(성종 13) 87세 : 강진 만덕사에 조종영세(祖宗永世)의 수륙재를 올릴 수 있도록 전답 10결(結)을 시주함.
▲1486년(성종 17) 91세 : 5월 11일 서거. 7월 과천 동적리 마장동(현 서초구 방배동)에 예장, 정효(靖孝)라고 시호를 받음.

종원 분포 상황

합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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