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군파 약사

계양군 증(? : 1427∼1464)


자가 현지(顯之)로 세종대왕의 2남이다.

어머니는 신빈(愼嬪) 김씨이다. 신빈 김씨는 계양군을 비롯하여 의창군(義昌君) · 밀성군(密城君) · 익현군(翼峴君) · 영해군(寧海君) · 담양군(潭陽君) 등 여섯 아들을 낳았다. 계양군이 신빈 김씨의 장남이다. 계양군의 배위는 좌의정 한확(韓確 : 1403∼1456)의 딸로 세조의 장남 도원군(桃源君 : 後의 德宗)과는 동서(同챢)의 사이로, 세조대왕과 가까웠다. 아버지 세종대왕의 총애가 지극했으며 학문을 즐기고 특히 글씨를 잘 썼다. 세조대왕이 즉위하는데 한 몫을 했으며, 그 공으로 1455년(세조 1) 좌익공신(左翼功臣) 1등이 된 후로부터 세조의 측근에서 서무(庶務)의 출납을 맡아 신임을 얻었으며 1460년(세조 6) 세자가 혼인할 때 가례도감(嘉禮都監) 제조(提調)를 겸했었다. 시호는 충소(忠昭)이다.

계양군은 영원군(寧原君) · 강양군(江陽君) · 부림군(富林君) · 방산수(方山守) 네 아들을 두었는데 차남 강양군은 막내 숙부 담양군에게 양자로 갔다. 장남 영원군은 아들이 없어 셋째 아우 부림군의 차남 도안군(道安君)을 양자로 맞이했다. 이 도안군이 문천정(文川正)과 평양령(平陽令)을 낳아 큰 집을 이루었다. 그리고 부림군의 장남 회안부정(淮安副正)은 외아들 덕양부수(德陽副守)를 두었고 덕양부수는 말손(末孫) · 희손(希孫) 두 아들을 두었으나 손자대에서 무후(無后)했다. 또 방산수는 당대에서 후사가 없어 후손이 끊겼다. 그리고 도안군의 차남 평양령도 후손이 없어 결국 문천정 손만이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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