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성군파 약사

계성군


성종대왕의 2남이며 연산군의 아우이다. 숙의(淑儀) 하씨 소생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특하였으나 26세로 조졸하여 월산대군의 손자 계림군(桂林君) 유(瑠)를 계자로 삼았다.

계림군은 연양군(延陽君) 등 5남을 낳았고 거기에서 손자가 10여 명을 두어 후손들이 퍼져나갔다.

계성군 후손 중에는 남규(南圭 : 1765∼1837) 남익(南翼 : 1771∼1835) 형제가 문과 급제자이다.

그러나 무과 급제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무림군파, 덕흥대원군파와 더불어 우리 문중의 3대 무관 집안이라 할 수 있다.

무관중에는 영조 때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여 문무공신에 완춘군(完春君)에 봉해진 수량(遂良 : 1673∼1735)과 흥선대원군의 파락호시절에 빰을 때린 일화로 유명한 장렴(章濂 : 1821∼1873) 형조판서, 그의 아버지 포도대장을 지낸 무관이면서 명필인 남식(南軾 : 1803∼1878) 등 제제다사(濟濟多士)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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