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군파 약사

무산군


성종대왕의 12남으로 1490년(성종 21)에 태어나 1525년(중종 20)에 별세하였다. 연산군 때에 안동 춘양에 피신하여 음요학정의 위기를 모면하였고, 문필 문장이 뛰어났으며 36세에 별세한 후 효정(孝貞)이란 시호를 받았다. 슬하에 8남 4녀를 두어 4녀는 명문가에 출가하고 8남 중에서 영안정(永安正) · 부안군(扶安君) · 영원군(永原君) 3남만이 후손을 두어 5개 파가 현존한다.

장손인 영선군(1509∼ ? )계는 3대를 계속 계자로 대를 잇다가 태안군계 석명의 2남 정흥을 입계하여 숙종 때의 3문장 · 첨지 · 규장각 부제학 · 금부도사 등을 배출하였다. 한말에 건춘(建春 : 1837∼1936)은 내각 외사국장을 역임하고 종중사업으로 양주 종중재산을 128명 연명으로 등기하여 영구 보존하는 일에 공헌하였다. 후손은 경향 각지에 70여 호가 번창하고 있다. 종손은 민우(敏雨 : 1920∼)이다.

영안정(1512∼1536)계는 화릉군의 장남 태산수가 이어 승헌대부 항산군에 입계한 석형(생부 경인)의 후손에서 승지 증 호조판서 가의대부 등의 인물이 배출되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과 경기도 김포를 중심으로 100여 호가 번창하다가 1989년 분당신도시사업으로 도시화하였고, 서구(序九 : 1929∼)의 노력으로 묘역을 충북 충주로 천묘하였다.

태안군(1520∼1592)계는 화릉군의 차남 인원수를 입계하여 정자동의 지명유래를 남겼고, 숭헌대부 · 창선대부 · 통정대부 · 선무랑 · 현감을 배출하였다. 1699년(숙종 25)의 대질환(기근 · 전염병)이 있은 후 충북의 미원 · 보은 등지에서 30여 호, 강원 홍천에서 50여 호가 번창하다가 근래에 도시화하였고, 특히 분당신도시사업에 따라 태안군과 정촌묘역이 경기도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118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부안군(1524∼1598)계는 장자 완성군이 순안군과 순평군을 두었는데 순안군 후손은 경기 김포 계양에 100여 호가 살고, 순평군 후손도 같은 고을에 살면서 병자 호가진무종훈공신을 비롯하여 효열 효부와 삼사 대사간 · 승지 · 목사 · 판서 · 궁내부대신 등의 인물이 배출되었다. 부안군의 차남과 3남은 출계하고 4남 상원군 후손은 경기 광주 퇴촌과 양평에 거주하는 동안 삼사를 거쳐 병조참판 증 사복정 좌승지 증 호조판서 등의 인물을 배출하였고, 5남 창녕군 후손은 충남 부여를 거쳐 의원군 자손이 경기도 평택에 100여 호가 번창하고 있다.

영원군(1514∼?)계는 차남 춘계군이 임진 호가원종공신이고 장남 화성군 이후 충남 보령에 60여 호가 번창하고, 춘계군의 3남 오성도정 이후 군수 · 무과 오위장 · 증 이조판서 · 승지 · 목사 · 교리 · 증 호조판서 등을 배출하였으며 충남 청양에는 100여 호가 번창하고, 영원군의 4남 추계수의 후손 청성감 자손은 경기도 김포에 60여 호가 정주하다가 근래에 도시화하였다.

무산군 파조 이후 500여 년간 많은 문무백관이 이 나라 발전에 공헌하였다. 문과 대과 급제자만 12명이 된다. 무산군의 사당은 일제탄압으로 한 때 멸실되었다가 8 · 15광복 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복원했다가, 1989년 분당신도시 사업으로 철거됨에 따라 당시 종중회장 준우(俊雨)와 부회장 서구(序九) · 총무이사 규연(奎衍) 등이 주도, 무산군 사우 건립을 추진하기로하고 각 문중으로부터 성금을 받아 효정사(孝貞祠)를 이전 복원하게 되었는데 사당 주위에 있었던 백송(栢松)을 재목으로 건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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