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원군파 약사

양원군


성종대왕의 15남이며 숙의 남양홍씨의 소생이다. 양원군파는 용(庸)자 항렬 까지 21세를 내려오고 있다. 착하고 어질게 살았던 선조의 정신을 이어받아 법도를 지키고 행실을 바르게 하고 충(忠)과 효(孝)를 기본으로 윤리도덕을 지키면서 510여 년을 이어내려 왔다. 항상 예(禮)를 지키며 덕(德)을 쌓아 가문이 화목하고 자손이 번성하였다. 양원군의 장자 함녕군 수선(壽璿)의 묘소를 의정부시 녹양동 숙의 남양홍씨 묘역 서쪽에 모시면서 후손들의 선영이 되었다.

4세에 내려와서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죽이려고 종실을 위협하고 조정을 소란케 할 때 가담하지 않았으며 인목대비의 폐모를 주장할때 형제들과 의논한 후 반대하여 정도를 지켰던 여원도정 세헌(世憲), 병자호란때 강화도에서 한가족이 모두 순국 절명한 상원군 세령(世寧), 효종 때 김자점의 아들인 세룡이 작변을 도모하고 상궁을 범하고 핍박하려 할 때 변이 있음을 알리고 즉시 단봉문 아래서 잡아 화란을 평정한 해천군 영(暎), 1646년(인조 24) 사마시에 합격하여 원주목사를 역임한 목사공 정(晸), 병과에 합격하여 필선에 제수되어 간성군수를 거쳐 홍주목사를 역임한 필선공 섬(暹), 9세에조어시를 지었고 병과에 합격하여 저작박사 · 춘추관 · 승정원주사 · 사간원 정언을 거쳐 전라 관찰사를 역임한 취성당공 삼석(三碩), 1720년(숙종 46) 사마시에 합격 의금부도사 · 한림응교 · 제주 순찰사를 역임한 남록공 도원(度遠), 1790년(정조 14) 병과에 합격하여 승정원주서 · 봉사 · 시판관 · 홍문관교리 · 사간원을 거쳐 무장현감을 역임한 윤겸(允謙), 병과에 급제하여 정언 · 의전 · 부안현감을 역임하고 시집 4권을 남긴 주천곡공 윤행(允行), 음직으로 영양현감을 거쳐 공조참판 종정경 겸 경연 특진관을 역임한 병암공 준영(俊英), 효부가 한가문에 4명이 나온 태승(泰承), 황해도지방 혜민원 주사인 근수(根洙) 등의 후손들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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