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군파 약사

해안군


중종대왕의 2남으로 1511년(중종 5)에 태어났다. 휘는 희(쒷), 자는 부붕(不崩), 시호는 정희(靖僖)이다. 어머니는 숙의 남양홍씨로 중종대왕으로부터 가장 많은 은총과 권애를 입었다.

1519년(중종 13) 9세 때 해안군으로 봉군되었다.

배위는 영의정 성렬공(成烈公) 류순정(柳順汀)의 아들 진산군(晋山君) 홍(泓)의 딸을 군부인으로 맞이하였으나 1녀만 두고 1532년(중종 27) 27세 나이에 별세하였으며, 그 후 증 우찬성 홍유(弘猷)의 딸인 거창신씨를 맞아 6남 4녀를 두었다.

공은 평소 과묵하고 행동이 올바랐으며 음주하지 않고 용모가 단정하고 관옥같이 아름다워 부왕인 중종대왕은 일찍이 칭찬하기를 “나의 아들 중에 가장 침착하고 삼가 들떠 있지 아니함에 해안군 같은 아이가 없다.”하였다. 또한 중종의 잠저를 공에게 하사하여 지극한 사랑을 베풀기도 하였다. 또한 공은 늘 책을 가까이 하였으며 매 날리기와 말타기를 좋아했다.

1563년(명종 18) 병이 나 언어구사가 어려워 조알(朝謁)을 폐하였으나 항시 의관을 정제하고 있더니 부종으로 병세가 위태로웠을 때 명종대왕은 어의를 보내며 약을 내리고 치료케 하였으나 별세하였다. 이에 임금은 부음을 듣고 3일간 조회를 폐하고 부의를 내리었고, 내관을 보내어 유가족을 조상하였다. 향년 63세이다.

 공의 신도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麟趾振振莫賢海安
 기린 발굽 길도다 자손이 줄줄이 따르네
 그러나 해안에서 더 어진이 없었네
 人願子多公六其子
 사람마다 아들 많이 원하나니
 공은 여섯 아들 두었네
 富貴素有天賦赤完
 부귀는 이미 타고 났고 천성 또한 완성 되었네
 豈曰不壽甲子餘三
 어찌 수 못했다 하랴 한 갑자에 또 셋 더하였네
 康陵曰兄靖陵曰子
 강릉은 가로되 형이요 정릉은 가로되 아들이다
 탍敬玄宅海安在此
 어찌 공경하지 아니하랴 해안이 여기 계심이라

해안군은 서릉군(西陵君) 섬(첎) · 서흥군(西興君) 학정(鶴貞) · 오천군(烏川君) 굉(?) · 오산군(烏山君) 현(鉉) · 서천군(西川君) 금(錦) · 오강군(烏江君) 건(鍵)의 6남과 5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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