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양군파 약사

덕양군


휘는 기(岐)이고 자는 백고(伯高)로 1524년(중종 19)에 중종대왕의 5남으로 태어나 어린시절부터 총명하여 9세 때인 1532년에 덕양군으로 봉군되고 그 후 종친부 · 종부시 · 사옹원 · 문소전 · 연은전 등에서 관직을 역임하고 1581년(선조 14) 향년 58세를 일기로 생애를 마쳤다.

슬하에 4남을 두었는데 장남 종린(宗麟)은 풍산군(豊山君) 현록대부로, 차남 희린(希麟)은 풍성군(豊城君) 정의대부로, 3남 명린(命麟)은 풍천도정(豊川都正) 명선대부로 대를 이어 세 아들의 손이 번창하여 오늘에는 3천세대 1만 5천명을 헤아리는 대종중이 되었다. 다만 4남 계린(季麟) 풍해수(豊海守)는 후사가 없다.

덕양군은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청계산(淸溪山)에 있는 와동(瓦洞) 신좌에 안장되었다.

공이 1581년(선조 14) 6월에 별세하고 그 해 9월에 장례를 치르고자 상여가 판교(板橋)에 이를 즈음이었다. 놀랍게도 명정이 돌풍으로 공중에 날아 올랐다가 산기슭에 떨어졌다. 궁복과 관속이 황급히 쫓아가 그 곳에서 시복이 덕양군의 옥관자를 주워 들고 놀라며 말하기를 “선대감이 생전에 수렴을 하시다가 유실한 옥관자가 여기에 있습니다.”고 하였다.

지관은 그 곳 주위 산세와 내룡(來龍)을 살펴보고 이곳을 대명지라 하여 묘자리로 정했다는 아름다운 기담이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이 종산(宗山)이 명당으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그 묘역 넓이 또한 42만여 평에 이른다. 가까이 서울 분당 신도시가 인접해 있고 고속도로가 그 앞을 지나가고 있다.

덕양군의 시호는 `정희(靖僖)'이다.

4백년이 지난 1995년 5월 28일 덕양군 묘소 아래에 있는 사우 `정희사(靖僖祠)' 옆과 재실 왼쪽에 신도비를 세웠다.

덕양군파는 지난 날 입신한 사람이 많았다. 시호를 받은 분이 덕양군 정희공을 비롯 충숙공(忠肅公) · 장정공(莊靖公) · 양정공(良靖公) · 정의공(靖毅公) · 문경공(文敬公) 등 여섯 분이 된다. 문과 급제 18여 명과 무과 급제 22여 명을 배출했고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상만 165명이나 된다.

현재는 정무장관 · 초대 문화체육부장관 · 과학기술처장관 · 외교관 · 국회의원 · 율사(律士) · 서울시 교육감 · 박사 · 교수 · 언론인 · 학자 · 포항제철 고문 · 학예술인 · 연예인 등등 많은 인재가 계속 나와 사회 각계 각층에서 활동함으로써 선조를 빛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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