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화군파 약사

순화군


선조대왕의 6남으로 순빈(順嬪) 김씨(金氏)의 소생이다. 1592년(선조 25) 13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근왕병을 모집하려고 강원도로 갔다가 왜적이 파죽지세로 함경도로 넘어가니, 그곳에서 근왕병을 모집하는 임해군과 만났다. 그러나 두 왕자는 회령(會寧)에 당도했을 때 아전 국경인(鞠景仁)이 왜적에게 알리어 체포되어 왜적에게 구금되었다가 나중에 화의(和議)가 성립되자 1593년(선조 26) 9월 29일에 풀려났다. 그 후 궁으로 돌아와 황혁(黃赫)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나 소생이 없이 1607년(선조 40) 28세로 조졸했다.

그래서 순화군은 아우 인성군(仁城君)의 차남 해안군(海安君)을 계자로 삼았다. 해안군이 들어와 배위 제주고씨와의 사이에서 2남 3녀를 낳고, 배위 경주이씨와의 사이에서 3남 2녀를 낳아, 해안군은 영창군 · 영래군 · 탐계군 · 탐릉군 · 탐산군의 아들 5형제를 두었다. 이 다섯 아들 중 장남은 아버지 대를 이어 남양주시 진접읍에 살고, 차남은 포천으로, 3남과 4남은 용인으로, 5남은 구리시로 흩어져 자리를 잡음으로써 각기 집성촌을 이루었다.

그리고 영창군의 장남 여산군(礪山君) 후손중에서 문과급제자 3인을 배출하여 순화군파를 빛냈다. 곧 진규(晋圭) · 종목(鍾穆) · 오응(五應)이 그들이다. 이외에 진사 2명, 생원 3명, 무과 6명, 음사(蔭仕) 8명을 배출했다. 관직으로는 이조참의 · 승지 · 부사 · 군수 · 현령 · 현감 · 찰방 · 참봉 등의 동반과, 절충장군 · 호군 · 중군 · 내금위장 · 사과 등 무관 벼슬도 두루 지냈다.

순화군의 6대손 종삼(鍾三)은 무과 호군(武科護軍) 및 관찰사, 7대손 낙소(樂沼)는 무과현감(武科縣監), 8대손 수영(秀英)은 무과 사과(武科司果), 순화군의 9대손 근응(根應)은 군수의 벼슬을 지냈다.

현재에도 종원수는 적은 편이지만, 교수 · 회사 대표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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