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단ㆍ사직대제 社稷壇ㆍ社稷大祭 중요무형문화재 제111호

사직은 원래 토지신인 사(社)와 곡물신인 직(稷)에게 제사하는 단(壇)을 사직단(社稷壇)이라고 한다. 사단은 동쪽, 직단은 서쪽에 설치하였다. 토지와 곡식은 전근대 사회에서는 그 자체가 지배적인 생산수단과 그 생산물을 의미하였으므로, 토지신과 곡물신에 대한 숭앙은 이미 고대로부터 그 의미가 중시되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선 국가제사로 정립되고 봉행되어 왔다. 사직이 종묘와 더불어 국가제사의 대종을 이루어 온 것은 그러한 인식의 자연스러운 발현이었다.

우리 나라 역사에서 사직에 제사를 지낸 기원은 이미 삼국시대부터였다. 고려시대는 성종이 사직을 제도화한 이후로 고려 일대를 통하여 각종 제의와 기우제(祈雨祭)ㆍ기곡제(祈穀祭) 등을 여기에서 거행하였다. 조선왕조가 수립된 후, 태조 3년(1394) 11월에 경복궁의 서쪽 인달방(仁達坊)으로 사직의 위치가 결정되고, 다음해 정월부터 사직단의 축조를 착수하기 시작하였다. 사직단의 축조는 개경(開京) 환도로 공사가 일시 중단되었고, 또 종묘ㆍ궁궐ㆍ성곽 등 대규모 공역이 동시에 진행되는 관계로 백성들의 노동력 징발이 여의치 않아, 태종 7년(1407) 5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사직단이 완성되자 단 위에 담장을 두르고 신실(神室)과 신문(神門)을 세웠다. 그리고 태종 16년에는 단 주변의 재실(齋室)을 마련하였다.

세종 8년(1426)에는 당(唐)의 옛제도에 의거하여 사직단을 사직서(社稷署)로 승격시키고, 그 관원으로 태종대 이래 사직단직(社稷壇直) 2인만을 두어온 것을 확대 개편하여 단직(壇直)을 녹사(錄事)로 삼고 그 위에 종 7품의 승(丞) 1인을 두었다. 그리고 이 사직서승은 종묘서승 아래에 서열시키고, 봉당시(奉當寺) 주부(注簿)로서 겸직하게 하였다.

사직단에는 중춘(仲春)ㆍ중추(仲秋)의 첫 번째 ‘무(戊)’자(字)가 든 날과 납일(臘日)에 제향을 받들어 국가와 민생의 안전을 기원하였고, 정월에는 기곡제를, 그리고 가뭄ㆍ한발 등 천재지변이 일어날 때마다 기우(祈雨)ㆍ기청(祈請) 등 기양제(祈禳祭)를 가끔 행하였는데, 2000년 10월 사직대제가 국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매년 9월 중에 봉행하고 있다.

제향일 안내

일시 장소 시간
매년 9월 4째주 토요일 종로구 사직동 1-28
(사직단 : 사적 121호)
정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