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英園)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英王)과 부인 이방자(李方子)의 묘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왕 이은(李垠,1897~1970)과 부인 이방자(李方子,1901~1989)의 묘로 남양주시 금곡동 141번지에 있다. 홍릉·유릉과 더불어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207호로 지정되었다.

입구에는 제실이 있으며, 묘역에는 나지막한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에 봉분과 석물을 조성하였다. 제실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일자형 팔작지붕 건물로 다른 곳에 비해 아담한 편이다. 봉분은 둘레돌 대신 연꽃 문양을 조각한 난간석을 둘렀고, 봉분 앞으로 석양(石羊)·상석(床石)·망주석(望柱石)·장대석(長臺石)·문인석(文人石)·무인석(武人石)·마석(馬石)·장명등(長明燈)을 두었다. 상석은 4개의 북석으로 받치고 있는데 북석에는 귀신을 쫓아 준다는 귀면(鬼面)무늬가 새겨져 있다. 또 망주석의 받침돌은 팔각형으로 그 위에 안상(眼象)문양과 꽃잎이 위로 향한 꽃문양, 그리고 청설모를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문인석으로 금관조복형(金冠朝服形)이며, 장명등은 사각형의 받침대 모양으로 사방에 꽃문양을 새기고 그 위에 불창을 만들었다. 묘역은 해방 이후에 조성되었지만, 그 형태나 조각이 홍릉·유릉의 영향을 많이 받아 양식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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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5년 10일 남양주시 금곡동 141-1
(홍․유릉 역내)
정오

순강원 제14대 왕 선조의 후궁이며 원종(元宗 : 후에 추존됨.)의 생모인 인빈김씨(仁嬪金氏)의 묘

사적 제356호. 1755년(영조 31)에 영조는 인빈김씨의 사우(祠宇)를 봉안하고 증축하려 하였으나 국법에 어긋나서 시ㆍ원임대신(時原任大臣)과 예관(禮官)을 불러모아놓고 추숭(追崇)할 것을 토의하여 육상궁(毓祥宮)의 전례를 좇아서 사우를 저경궁(儲慶宮)으로 하고, 묘를 순강원으로 정하기로 하여 그의 지위를 승격하였다.

그리하여 궁원(宮園)의 식례(式例)에 의거, 수호군(守護軍) 원호(元戶) 30명을 병조에 명하여 충당하도록 하고 역사를 시작하였다.

공역(工役)이 끝나자 영조는 순강원에 나가 친히 제사를 지냈으며, 그 뒤 수차에 걸쳐서 개수하고 향사 및 분향도 조묘례(祧廟例)에 따르도록 하였다. 이 묘를 보호하기 위하여 종9품의 수봉관(守奉官) 2인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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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11월 4째주 일요일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 150
(순강원:사적 356호)
정오

소령원(昭寧園) 조선 제21대 영조(英祖)의 생모(生母)인 숙빈(淑嬪) 최씨(崔氏)의 무덤

숙빈 최씨는 1670년(현종 11) 11월 최효원(崔孝元)의 딸로 태어나, 7세에 궁에 들어가 숙원(淑媛)·숙의(淑儀)·귀인(貴人)을 거쳐 숙빈에 봉해지고, 1694년(숙종 20)에 영조를 낳았다. 1718년(숙종 44) 3월 49세로 죽어 서울 궁정동 칠궁 안에 사당을 짓고 그 묘호(廟號)를 육상궁(毓祥宮), 묘호(墓號)를 소령원이라 하고, 묘비는 1744년(영조 20) 영조가 친히 썼다.

소령원 관원으로 수봉관(守奉官: 從九品) 2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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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4월 3째주 토요일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267
(소령원:사적 358호)
정오

수길원(綏吉園)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후궁인 정빈이씨(靖嬪李氏)의 묘

정빈은 이준철(李俊哲)의 딸로 영조가 즉위하기 전에 후궁인 소원(昭媛)으로 있으면서 뒤에 진종(眞宗)으로 추존된 경의군(敬義君)을 낳았으며, 28세로 요절하였다.

위패는 서울 종로구 궁정동에 있는 칠궁(七宮)에 봉안되었으며, 1725년(영조 1)에 정빈으로 봉하여졌다. 처음에는 묘라 하였으나, 1778년(정조 2)에 수길원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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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4월 3째주 토요일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267
(수길원)
정오

휘경원(徽慶園)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후궁 수빈 박씨(綏嬪朴氏)의 묘

사적 제360호.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에 있다. 처음에는 경기도 양주시 배봉산(拜峰山: 현재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동 산 7∼8번지 일대) 아래에 있었으나 뒤에 두 차례나 이장하였다.

수빈 박씨는 1770년(영조 46)에 태어나 1787년(정조 11) 후궁 간택에 일등으로 뽑혀 수빈에 봉해지고 가순궁(嘉順宮)이라는 궁호를 받았다. 정조와의 사이에 순조와 숙선옹주(淑善翁主)를 두었고, 1822년(순조 22) 창덕궁 보경당(寶慶堂)에서 죽었다.

이에 현목(顯穆)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묘호(廟號)를 ‘휘경’이라 정한 뒤, 상지원(相地員)을 시켜 당시 경기도 양주군 배봉산 아래에 묘역을 정하고, 1823년 2월 27일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그 뒤 1855년(철종 6) 인릉(仁陵 : 순조와 비 순원왕후의 능)의 천장지(遷葬地)를 구하면서 휘경원도 천장하기로 하였다.

이 해 10월 6일 수빈 박씨의 묘소를 양주 순강원(順康園: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의 묘) 우강(右岡)으로 옮겼다가 1863년 풍수지리상 부적당하다고 해 다시 양주의 달마동(達摩洞: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동)으로 옮겨 예장하였다.

당시의 상설(象設)로는 혼유석, 장명등,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 양석(羊石) 1쌍, 표석(表石)·제각(祭閣)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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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5월 4째주 일요일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267
(휘경원:사적 360호)
정오

영휘원(永徽園) 조선 제26대왕 고종의 후비 순헌귀비 엄씨(純獻貴妃嚴氏)의 묘소

사적 제361호. 영휘원은 조선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사친(私親)인 순헌귀비 엄씨의 원소(園所 : 왕가 산소의 다른 이름)이다. 순헌귀비는 증찬성 진삼(鎭三)의 딸로 1854년(철종 5)에 태어나 1859년에 입궁해 민비가 을미사변으로 시해당하자 아관파천(俄館播遷) 때 고종을 시봉(侍奉)하였으며, 1897년 영왕을 낳고 1903년 귀비로 책봉되었다.

엄귀비는 양정의숙ㆍ진명여학교ㆍ명신여학교의 설립에 참여하는 등 근대 여성교육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1911년 7월에 죽었다. 같은 해 8월에 안장하고 원호(園號)를 영휘라고 하였으며, 위패는 덕수궁 영복당(永福堂)에 봉안되었다가 경복궁 서북측에 있는 칠궁(七宮)으로 이안(移安)되었다.

원의 묘역시설로는 곡장(曲牆 : 무덤 뒤에 둘러싼 작은 담)ㆍ상설(象設, 石虎ㆍ石馬)ㆍ혼유석(魂遊石)ㆍ장명등(長明燈)ㆍ망주석(望柱石)ㆍ문인석(文人石)ㆍ무인석(武人石)ㆍ석마(石馬)ㆍ홍살문(紅箭門)ㆍ정자각(丁字閣)ㆍ비각(碑閣)ㆍ제실(祭室)ㆍ우물[靈泉]ㆍ사초지(莎草地 : 오래 되거나 허무러진 곳을 떼로 잘 입혀 다듬은 곳) 등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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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4월 13일 동대문구 청량리동 204-2
(영휘원:사적 361호)
정오

대빈묘(大嬪墓) 조선 제19대 왕 숙종의 후궁이자 제20대 왕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의 묘

숙종의 비인 장희빈의 무덤으로, 사적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내에 있다. 원래는 경기도 양주에 있었으나 희빈장씨의 묘자리를 두고 불길한 징조가 있다고 간언되어 이장이 결정되었다. 당시 경기도 수원 일대와 광주군 오포면이 이장지로 검토되었고 최종적으로 현 광주시 오포면 문형리로 이장하였다. 1969년 경기도 광주시 도시구획으로 희빈장씨의 묘자리에 도로가 들어서게 되자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경내로 이장하였다. 희빈 장씨(?~1701)는 조선 역사상 유일하게 궁녀의 신분으로 왕비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정치적으로는 남인에 속했고 숙종의 총애를 받아 경종을 낳았다. 하지만 폐비 민씨 등 당파에 휘말려 숙종으로부터 외면받았고 결국 폐비되었다가 사사되고 말았다.

서오릉 내 경릉에서 밑으로 내려와 옆으로 조금 돌아가면 나오는, 서오릉에서 가장 후미진 곳에 작은 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위치나 묘의 전체적인 꾸밈새, 석물 등이 일반 사대부 집안 묘보다도 초라한 것을 통해 희빈 장씨에 대한 후대 역사가들의 평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장할 때 숙종의 명릉 옆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게 하였다. 대빈묘(大嬪墓)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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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11월 9일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산30-1
(서오릉 내)
정오

회인원(懷仁園) 대한제국의 마지막 회은황세손 이구의 원(園)

황세손은 일제 강점기의 두 번째 이왕(李王)인 의민태자 이은(李垠)과 비(妃) 의민황태자비 이방자(李方子)의 아들로 도쿄에서 태어났다. 생전에 건축사와 대학교수 등으로 활동했고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총재, 종묘제례 봉행위원회 총재로도 활동하였다. 2005년 일본에서 훙서하자 창덕궁 낙선재으로 운구해 안치하였다가 국장을 지내고, 이해 문화재청과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의 주최로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 권역 내 영원 옆에 예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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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7월 16일 남양주시 금곡동 141-1
(홍․유릉 부속림 영원 내)
정오

순창원(順昌園) 조선 제13대 왕 명종의 장자인 순회세자(順懷世子)와 세자빈인 공회빈(恭懷嬪) 윤씨의 합장묘

사적 제198호인 서오릉 내 경릉(景陵) 왼쪽 언덕 위에 있다. 원래는 순회묘라고 하였으나 그 뒤 순창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 왕실의 무덤은 품격에 따라 능, 원, 묘로 구분하였으며 이 가운데 원은 왕의 생모나 왕세자, 빈의 무덤을 가리킨다. 봉분 주변으로 정자각과 문인석, 여러 석물 등이 배치되었으나 비각과 비석은 남아 있지 않다.

순회세자(1551~1563)는 명종의 장자로 태어나 1557년(명종 12) 7세의 나이로 세자에 책봉되었으나 13세에 요절하였다. 공회빈 윤씨(?~1592)는 윤옥의 딸로 1559년에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순회세자가 요절하자 30년을 홀로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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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장소 시간
매년 10월 6일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산30-1
(서오릉 내)
정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