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대왕 - 시대상 (6)
제 18대조   이름(한글):현종대왕   이름(한자):顯宗大王

왕이 다시 하교하기를,
“계사(啓辭)가 분명하지 못하다. 대왕대비께서 오늘날 기년복과 9월복에 어느 복을 입어야 하는지 왜 귀결처가 없단 말인가?”
하자, 영의정 김수흥이 대답하기를,
“오늘은 다만 기해년의 복제를 의논하였을 뿐이고, 대왕대비께서 대비에게 어떤 복을 입어야 될지에 대해서는 감히 가벼이 먼저 의논해 정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왕이 또 탑전에 불러들여,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의도를 힐문하니, 김수흥이 황공하여 사죄하고 글로 써서 아뢰겠다고 청하였다. 드디어 나가 빈청의 신하들과 재차 계사를 올리기를,
“<대전>에서 복제를 상고해 보니 장자(長子)의 아내에게 기년복을 입어주고 중자(衆子)의 아내에게는 대공복을 입어준다고 하였을 뿐 승중(承重)의 여부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이로써 살펴보면, 대왕대비의 복제는 대공으로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그러나 사체가 중대하므로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장순왕후(章順王后)의 상에서와, 소혜왕후(昭惠王后)가 공혜왕후(恭惠王后)의 상에서 반드시 이미 행한 제도가 있을 것이니, 춘추관(春秋館)으로 하여금 <실록>에서 상고해 내게 하소서.”
하였다. 왕이 <실록>이 강도(江都)에 있어 상고해 내기 쉽지 않다 하여 다시 모여 의논을 드린 뒤에 <실록>을 상고해 내게 하였다. 김수항 · 김수흥 등이 또 `<경국대전>에 장자(長子)와 중자(衆子)의 복은 모두 기년으로 되어 있다\'라고 대답하면서 아뢰기를,
“만일 차례로 논한다면 저절로 장자 · 중자의 구별이 있습니다만, 중자가 왕통을 계승할 경우 장자가 될 수 있다는 조문은 국가의 법전에 뚜렷이 나타난 곳이 없습니다. 오늘날의 복제는 국가의 법전 이외에는 억견(臆見)으로 가벼이 의논하기 어렵습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기해년 복제를 의논해 정할 때에 장자 · 중자에 대한 말이 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는데, 이제 와서는 감히 대공의 설을 말한단 말인가? <대전>의 오복조(五服條)에 왕통 계승에 관한 조항이 없는 것은, 비록 시왕(時王)이 제정한 예라 할지라도 이게 곧 미비한 점이다. 시왕이 제정한 예라고 핑계대고 <예경(禮經)>을 참고하지 않으니 오늘 회의하는 뜻이 어디에 있는가?”
하였다. 빈청에서 재차 계사를 올려, <의례(儀禮)> 주소(註疏)의 4종 중에 `체(體)이기는 하나 정(正)이 아니면 삼년복을 입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하여, `국가의 법전이 <예경(禮經)>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대답하였다. 현종은 승지 김석주(金錫胄)에게 명하여 <의례> 경전(經傳)의 `아버지가 장자를 위하여 입는다[父爲長子]\'는 조목의 주소(注疏)를 문단마다 해석하여 들이게 하였다. 이튿날 재차 올린 계사에 답하기를,
“계사가 터무니없어 나도 모르게 놀랐다. 경들은 모두 선왕의 은혜를 입었는데, 이제 와서 감히 `체이기는 하나 정통이 아니다[體而不正]\'라는 설로 오늘날의 예율을 삼고 있다. <예경> 주석 중의 `서자(庶子)라고 한 것은 장자와 엄격히 구별한 것이다\'는 설은, `4종(種)은 삼년복이 될 수가 없다\'는 문귀와 관통되지 않는다. 가공언(賈公彦)의 소에 이미 `첫째 아들이 죽으면 적처(嫡妻)에게서 난 둘째 아들을 세우는데 이 역시 장자(長子)라고 부른다\' 하였으니, `체이기는 하나 정통이 아니다[體而不正]\'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경들이 이처럼 이치에 가깝지 않은 어긋난 말을 예율로 정하여 선왕을 `체이기는 하나 정이 아니다\'라는 것으로 지목하였으니 임금을 박하게 대우하였다고 하겠는데, 누구에게 후하게 하려고 한 것인가? 막중한 예를 의탁한 논의를 가지고 정제(定制)라고 결단할 수 없으니 당초에 마련한 국가의 제도에 따라 정하여 거행하라.” 하였다.
현종대왕 - 시대상 (7)
현종대왕 - 시대상 (8)
현종대왕 - 시대상 (9)
현종대왕 - 시대상 (10)
현종대왕 - 시대상 (11)
현종대왕 - 시대상 (12)
현종대왕 - 시대상 (13)
현종대왕 - 시대상 (14)
현종대왕 - 시대상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