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世) 입전(立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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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9-15 17:14 조회681회 댓글0건본문
4세 광희공의 아들로 이름은 입전이요, 벼슬은 사도(司徒)를 지냈다.
배위는 한림(翰林) 백광선(白光善)의 딸이다.
<씨족원류>에는 입전공의 벼슬이 삼중대광사도(三重大匡司徒)요, 이 입전공부터 고려의 벼슬을 하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사도'란 고려 때 삼공(三公 : 司馬 · 司徒 · 司空)의 하나로 정1품이었으며, 삼사(三師)와 더불어 임금의 고문이었다. 원래는 `삼중대광' 혹은 `벽상삼한(壁上三韓)'이란 품계가 있었는데 `사도'가 높은 벼슬이기 때문에 앞에 이런 품계명을 덧붙여 `삼중대광사도'라고 부른 듯하다.
`한림'은 한림학사(翰林學士)의 준말로 고려 때 한림원(翰林院)에 소속된 정4품의 관직이었다.
<완산실록>에는 입전공의 일화가 없고 <동국세기>에는 입전공이 문옹(文雍)으로 표기되어 나오는데, 8형제 중 막내로서 위로 7형이 모두 전염병으로 일시에 사망하여 합동 장례를 치르고 유리걸식하니, 임금님이 그 소식을 듣고 고결함에 탄복하여 고관의 직책까지 주었다는 내용이 곁들어져 있다.
또 <충효전>에도 이 이야기와 대동소이하나 입전공이 문옹(文翁) 으로 기록되고 8형제 중 장형으로 되어 있다.
배위는 한림(翰林) 백광선(白光善)의 딸이다.
<씨족원류>에는 입전공의 벼슬이 삼중대광사도(三重大匡司徒)요, 이 입전공부터 고려의 벼슬을 하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사도'란 고려 때 삼공(三公 : 司馬 · 司徒 · 司空)의 하나로 정1품이었으며, 삼사(三師)와 더불어 임금의 고문이었다. 원래는 `삼중대광' 혹은 `벽상삼한(壁上三韓)'이란 품계가 있었는데 `사도'가 높은 벼슬이기 때문에 앞에 이런 품계명을 덧붙여 `삼중대광사도'라고 부른 듯하다.
`한림'은 한림학사(翰林學士)의 준말로 고려 때 한림원(翰林院)에 소속된 정4품의 관직이었다.
<완산실록>에는 입전공의 일화가 없고 <동국세기>에는 입전공이 문옹(文雍)으로 표기되어 나오는데, 8형제 중 막내로서 위로 7형이 모두 전염병으로 일시에 사망하여 합동 장례를 치르고 유리걸식하니, 임금님이 그 소식을 듣고 고결함에 탄복하여 고관의 직책까지 주었다는 내용이 곁들어져 있다.
또 <충효전>에도 이 이야기와 대동소이하나 입전공이 문옹(文翁) 으로 기록되고 8형제 중 장형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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