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世) 광희(光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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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9-15 17:14 조회6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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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 천상공의 아들로 이름은 광희요 아간(阿干)을 지냈다. 배위는 대장군 황지선(黃志善)의 딸이다.

`아간'이란 벼슬은 `아척간(阿尺干)', `아찬'이라고도 하는데 신라 17 등 관계의 제6위였다 한다.

광희(光禧)를 <씨족원류(氏族源流)>에서는 `광희(光喜)'로 쓰기도 한다 했다.

태조고황제의 친구였던 이색(李穡 : 1328∼1396)이 지은 <환조대왕 정릉 신도비명(桓祖大王 定陵 神道碑銘)>에는 `전주리씨는 대성(大姓)으로 신라 아간 `광희'가 사도삼중대광(司徒三重大匡) 입전(立全)을 낳고…'라고 하여 우리 시조를 `광희'로 보았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완산실록>에는 별다른 일화가 없고, <동국세기>와 <충효전>에는 세직(世稷 : 世直)으로 시조를 삼아 중국 당나라 종실로 있다가 우리 나라로 건너와 전주에 세거하며 우리의 시조가 된 양으로 기록해 놓았다. 그것이 세대로는 이 `광희'공에 해당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세직공은 훌륭한 인물로 문장과 도덕이 뛰어난 당대의 은둔 군자인데 아들 8명을 두었다. 공은 이 아들들에게 형제의 의리를 끝까지 지키며 참언과 재물을 멀리하라고 경계하였다. 그러나 아들 8형제 중에 한 명만이 대를 잇고 나머지는 전염병에 모두 죽는 대목이 곁들어 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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