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군파 4세 약사에는 총 11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해평군(海平君) 1605∼1654 파명:인성군(仁城君)
  휘는 길(佶), 인성군의 장남으로, 초수는 정계봉군(正階封君)이고, 승헌대부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몸은 허약하였으나 의지와 신념은 누구보다도 곧고 강직하였다. 자라면서 부모를 섬기는 효성과 우애가 극진하였다. 간신배들의 모함으로 아버지 인성군이 간성과 원주로 유배당하게 되어 집안이 어지러웠지만 슬기롭게 대처하였다. 그후 유배지가 진도로 옮겨지자 가족과 더불어 진도 또는 제주도를 전전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유배생활을 면치 못하였다. 1654년 8월 22일 향년 50세로 별세하였으며 슬하에 세 딸을 두었다.
후사가 없어 해령군의 3남 광선군을 입후하여 승계하였다.
어려서부터 몸은 허약하였으나 의지와 신념은 누구보다도 곧고 강직하였다. 자라면서 부모를 섬기는 효성과 우애가 극진하였다. 간신배들의 모함으로 아버지 인성군이 간성과 원주로 유배당하게 되어 집안이 어지러웠지만 슬기롭게 대처하였다. 그후 유배지가 진도로 옮겨지자 가족과 더불어 진도 또는 제주도를 전전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유배생활을 면치 못하였다. 1654년 8월 22일 향년 50세로 별세하였으며 슬하에 세 딸을 두었다.
후사가 없어 해령군의 3남 광선군을 입후하여 승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