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21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익정(益炡) 169∼1782 파명:인성군(仁城君)
  자는 명숙(明叔), 호는 시한(是閑), 시호는 정간(靖簡). 인성군의 현손이고 밀창군의 아들이다. 영조 때 공조판서를 지낸 성규(聖圭)의 아버지이다. 1723년(경종 3) 생원이 되었고 호조정랑을 지낸 뒤 1736년(영조 12)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정언이 되었다. 집의 · 승지 · 예조참판 등을 거쳐 1740년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다. 이듬해 병조참판에 이어 1743년 한 해에 한성좌윤 · 강화유수 · 대사헌 · 대사간을 역임하고 1744년 이조참판으로 재직 중 동지사 겸 사은사의 부사가 되어 청나라에 가게 되었다. 사행 중 국위를 손상시켰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으나 곧 복관되어 1746년 다시 병조참판으로 기용되었으며 그 후 대사간 · 대사헌 · 우참찬을 거쳐 1754년 예조판서에 올랐다. 그 뒤 우빈객 · 판의금부사 · 공조판서 · 지돈녕부사 ·판돈녕부사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84세를 살아 기로소(耆老所)의 당상(堂上)이 되어 많은 은전을 받기도 하였다.
배위는 정경부인 죽산안씨 상태(相泰)의 딸이다. 공은 또 해학(諧謔)을 잘했다. 한번은 장인인 상태가 공의 장남 성규(聖圭)의 여주목사 임소에 와 있으면서 부인에게 한글 편지를 보내왔다. 내용인즉 기생집에서 한턱 내라는 것이었다. 이 편지를 본 공은 차남 우규(禹圭)에게 “너희 어머니 일은 말도 안된다.” 하므로 까닭을 물으니 “너희 어머니가 다 늙었는데 어떻게 기생 노릇을 하니?”하며 웃겼다.
배위는 정경부인 죽산안씨 상태(相泰)의 딸이다. 공은 또 해학(諧謔)을 잘했다. 한번은 장인인 상태가 공의 장남 성규(聖圭)의 여주목사 임소에 와 있으면서 부인에게 한글 편지를 보내왔다. 내용인즉 기생집에서 한턱 내라는 것이었다. 이 편지를 본 공은 차남 우규(禹圭)에게 “너희 어머니 일은 말도 안된다.” 하므로 까닭을 물으니 “너희 어머니가 다 늙었는데 어떻게 기생 노릇을 하니?”하며 웃겼다.
익준(益焌) 1699∼1770 파명:인성군(仁城君)
  여성군(礪城君)의 계자로 생부는 순화군파(順和君派) 여산군(礪山君) 방(枋)이다. 음사(蔭仕)로 참의(參議)를 지냈다.
배위는 풍산홍씨 중연(重衍)의 딸과 순창조씨 태성(泰成)의 딸이다.
묘소는 포천 직동 유좌이다.
배위는 풍산홍씨 중연(重衍)의 딸과 순창조씨 태성(泰成)의 딸이다.
묘소는 포천 직동 유좌이다.
익현(益炫) 1706∼1776 파명:인성군(仁城君)
  인성군의 현손이며, 기안도정의 장남이다.
청주목사 청주진 병마첨절사를 역임하였으며, 후에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 동지(同知) 의금부 도사(都事), 오위도총부 부총관 통정대부 등을 지냈다.
묘소는 해평군 묘하에 있다.
청주목사 청주진 병마첨절사를 역임하였으며, 후에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 동지(同知) 의금부 도사(都事), 오위도총부 부총관 통정대부 등을 지냈다.
묘소는 해평군 묘하에 있다.
익형(益炯) 1686∼1743 파명:인성군(仁城君)
  해원군의 증손이며 영원군의 장남이다. 생원시에 급제하여 부사를 지냈다.
배위는 영월엄씨 경운(慶運)의 딸과 평강전씨 이장(爾樟)의 딸, 그리고 강진한씨 제(?)의 딸이다.
묘소는 안산시 내면 양두리 역촌 경좌이다.
배위는 영월엄씨 경운(慶運)의 딸과 평강전씨 이장(爾樟)의 딸, 그리고 강진한씨 제(?)의 딸이다.
묘소는 안산시 내면 양두리 역촌 경좌이다.
인소(麟沼) 1805∼1890 파명:인성군(仁城君)
  인성군의 7대손이며 여성군의 현손이고 종빈(鍾彬)의 차남이다. 첨지중추부사를 지냈다.
배위는 문화류씨 흥렴(興濂)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포천군 소흘읍 직동리 신좌이다.
배위는 문화류씨 흥렴(興濂)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포천군 소흘읍 직동리 신좌이다.
정규(鼎圭) 1745∼1815 파명:인성군(仁城君)
  자는 경진(景鎭), 익선(益?)의 아들이다. 1783년(정조 7) 진사시에 급제, 진산군수를 지냈다.
배위는 숙인(淑人) 덕수장씨로 지중(至中)의 딸과 상산김씨 광보(光普)의 딸이다.
묘소는 여주군 등신면 자가동 건좌이다.
배위는 숙인(淑人) 덕수장씨로 지중(至中)의 딸과 상산김씨 광보(光普)의 딸이다.
묘소는 여주군 등신면 자가동 건좌이다.
정엽(鼎燁) 1733∼1796 파명:인성군(仁城君)
  자는 원삼(元三), 호는 하산(夏山). 해원군의 증손이며 남창군의 장남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서산군수를 거쳐 가덕대부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배위는 동래정씨 태성(泰成)의 딸과 안정나씨 대창(大昌)의 딸이다.
묘소는 과천시 수리산 장항에 3합폄했다.
배위는 동래정씨 태성(泰成)의 딸과 안정나씨 대창(大昌)의 딸이다.
묘소는 과천시 수리산 장항에 3합폄했다.
종도(鍾道) 1803∼1864 파명:인성군(仁城君)
  자는 사인(士仁), 호는 국헌(菊軒). 해령군의 5대손이며 남창군의 증손이고 현규(顯圭)의 4남이다. 호조참판을 지냈고 통정대부에 추증되었다.
배위는 밀양박씨 상수(尙壽)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우산리 고로지 오좌이다.
배위는 밀양박씨 상수(尙壽)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우산리 고로지 오좌이다.
종직(鍾稷) 1776∼1836 파명:인성군(仁城君)
  해평군의 5대손이며 익현의 손자이고 현규(玄圭)의 차남이다. 음사(蔭仕)로 무과를 지냈다.
배위는 남양홍씨 문섭(文燮)의 딸과 경주김씨 회주(晦柱)의 딸이다.
배위는 남양홍씨 문섭(文燮)의 딸과 경주김씨 회주(晦柱)의 딸이다.
항엽(恒燁) 1737∼1786 파명:인성군(仁城君)
  자는 명세(明世), 호는 송암(松庵). 정엽(鼎燁)의 아우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주부(主簿)를 지냈고 마지막으로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배위는 밀양박씨 운서(雲瑞)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학동리 후록 임좌이다.
배위는 밀양박씨 운서(雲瑞)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학동리 후록 임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