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군파 약사
인성군은
선조대왕의 7남으로 정빈(靜嬪) 민씨(閔氏) 소생이다. 정빈 민씨는 인성군 · 인흥군 · 정인옹주 · 정선옹주 · 정근옹주 등 2남 3녀를 두었다.
인성군은 5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해주와 의주로 피난갔고 정유재란 때는 성천으로 피난하는 등 어릴 때 고생을 많이 했다. 광해군 때에는 인목대비 폐위에 종친들의 주역이 되었다고 하여 인조반정 후 탄핵받았으며, 이괄의 난 때에는 강릉과 원주로 유배되기도 하였다. 1628년(인조 6)에는 류효립(柳孝立) 등의 모반에 왕으로 추대되었다 하여 자진하라는 왕명으로 같은해 5월 20일, 41세로 생애를 마쳤다. 그 후 인성군의 자녀 5남 2녀와 부인 윤씨는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10년만에 풀려나 복작되었고 다섯 아들도 모두 군으로 봉해졌다.
그러나 장남 해평군에게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셋째 아우 해령군의 3남 광선군을 계자로 삼았는데, 거기에서 기안도정 · 기성정 두 아들을 두게 되어 후손이 이어져 종손집이 되었다.
2남 해안군은 순화군에게 출계했고, 3남 해원군은 화창군 · 화선군 · 화산군 · 화춘군 · 화천군 · 화릉군 등 6남을 두었다. 4남 해령군은 광평군을 비롯한 9남을 두었으나 셋째 광선군이 해평군에게 출계하고 풍안수 · 풍양부수가 무후했으며 나머지 후손이 퍼져나갔다.
막내 아들인 해양군은 아들이 없어 셋째 형인 해원군의 3남 화산군을 입계하여 후손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인성군 후손들 중에서는 문과 급제 5명, 무과 급제 12명, 사마시 급제 28명, 음사(蔭仕) 35명을 배출했는데, 병조판서 · 공조판서 등 판서 2명, 승지 2명, 사간 1명 등의 저명인사를 냈을 뿐 아니라 그 종손집에서 재형(載灐) 전 국회의장, 그 아우인 재준(載濬) 대림회장 등 정계 · 재계 인물들이 있다.
종원 분포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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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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