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녕대군파 약사
함녕대군의
휘는 안(安)이요, 익조대왕의 장남이다. 어머니는 정숙왕후 등주최씨(登州崔氏)이다. 예조참판을 지냈다. 1872년(고종 9)에 함녕대군 영종정경부사로 추봉되고 4세에게도 군으로 습봉되었다. 배위는 평산신씨이다.
묘소는 함경남도 함흥시 동명사 마전동이었다가 실전되었다. 함녕대군은 외아들 평릉군(平陵君) 현(賢)을 두었는데 평릉군도 외아들 해풍군(海豊君) 만수(萬守)를 두었으며, 해풍군도 서천군(西川君) 천봉(天鳳)을 두어 4세가 모두 독자로 내려왔다. 서천군도 외아들 지손(枝孫)을 두고 지손도 남생(南生) 외아들을 두고 남생이 석근(碩根) · 석림(碩林) 형제를 두어 후손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후손들은 함흥을 비롯하여 영흥 · 정평 · 고원(高原) · 문천 · 장진(長津) 등에 분포하여 살았다.
후손들의 관직은 예조참판을 지낸 함녕대군 외에 공조참의 동백(東伯 : 1795∼?),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복술(福述 : 1801∼?),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항빈(恒彬 : 1847∼?)과 통정대부 인백(仁伯 : 1793∼1880) · 치현(致顯 : 1804∼?) 등이 있다.
또 함녕대군 5대손에 성균진사(成均進士) 남생(南省 : 1442∼?)이 있고 참봉이 4명인데 덕릉참봉 충신(忠信 : 1584∼?), 순릉참봉 수흥(壽興 : 1727∼1829), 안릉참봉 종근(宗根 : 1757∼1815)과 음관 참봉으로 응준(應俊)이 있다. 그리고 노직(老職) 통정대부로는 덕림(德霖) · 진석(進碩) · 장백(掌伯)이 있다.
무과출신은 9명인데 훈련원 봉사(奉事) 명술(明述 : 1778∼1835), 오위장 형춘(瀅春 : 1858∼?)을 비롯하여 웅재(雄才) · 철륜(哲倫) · 광욱(光郁) · 유전(有 王全) · 문규(文奎) · 길원(吉元) · 문옥(文玉)이 있다. 수직(壽職) 절충장군으로 지백(志伯)도 있다.
<선원속보>를 만들 때의 사손(嗣孫)은 학민(學珉)이요, 문장(門長)은 승복(承福)이며 도유사(都有司)는 상백(尙伯), 교정유사(校正有司)는 영석(永錫), 선서유사(繕書有司)는 형주(瀅鑄)였다.
<태조실록>에는 익조대왕의 초취부인은 손씨(孫氏)인데 두 아들을 두었다고 했다. 따라서 그 장남 규수가 혹 이 함녕대군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종원 분포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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