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산대군파 약사

월산대군


성종대왕의 형으로 덕행이 높아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가(史家)들이 중국의 태백(泰伯) 중옹(仲雍)에 버금간다고 칭송하였다. 우애가 깊고 학문 또한 왕자 중에 으뜸이었다.

대군은 덕풍군(德豊君)을 두었으나 단명하고 덕풍군은 파림군(坡林君) · 계림군(桂林君) · 전성부정(全城副正) 3남을 두었다. 파림군은 학문을 좋아하고 검소하였으며, 계림군은 계성군(桂城君)에게 출계하였으나 을사사화의 주모자라 하여 처형되고, 전성부정 역시 연루되었다 하여 금부(禁府)에서 국문을 당하다 별세했다. 6세 집의(執義) 희맹(希孟)은 병자호란 당시 성하지맹(城下之盟)에 참여하여 대의를 존중하고 지켰으며 자손들에게 관직과 부귀영화를 탐하지 말라는 유훈을 남겼다.

후손들은 이를 지켜 사마(司馬) 양시(兩試)에 합격하고도 조정에 출사하지 않고 학문을 탐구하는 선비들이 많이 배출되어 조정에서 여러 후손들에게 증직을 내리고 포상하기도 하였다.

8세 성재공(醒齋公) 형(炯)은 숭조의 정신이 지극하여 실전된 대군의 유고를 전국을 두루 다니면서 찾아 모아 <풍월정집(風月亭集)>을 중판 발간하였다.

13세 육은공(六隱公) 봉규(鳳圭)는 석광사(錫光祠)를 중수하고 우면산(牛眠山)에 태봉(胎封)을 봉축(封築)하는 등 대대로 내려오면서 숭조의 정신과 우애하는 마음이 돈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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