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군파 약사

이성군


성종대왕의 아홉째 아들로 휘는 관(慣), 자는 공숙(公肅), 시호는 장평(章平)이다.

어머니는 숙용 청송심씨로 1489년(성종 20) 1월 11일에 낳았다.

군은 성품이 온후하고 총명하여 부왕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으며 연산군의 폭정에 반기를 들고 중종대왕 등극에 앞장섰으며 항상 문소전 · 연은전과 종친부 종부시 · 사옹원 등의 도제조를 겸임하였고 서화에도 출중하여 중종대왕의 초상화를 그려 바쳤다. 특히 효심이 돈독한 군은 그 공로가 혁혁하여 중종과 명종 양조(兩朝)의 원종 1등공신이었다. 1516년(중종 11) 1월에 충청도 태안군에 있는 태복지(太僕地 : 임금이 타는 말을 기르는 곳) 8리(약 100만평)를 하사받았다. 5남 1녀를 두고 1552년(명종 7) 12월 29일에 별세하니 향년 64세였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산리곡의 갑향언덕에 모시었다.

이성군은 경양군(景陽君) · 금구정(金龜正) · 운성군(雲城君) · 한원수(漢原守) · 화산군(花山君) 등 5남을 두었고, 손자대에 영평군 · 해풍군 · 명원군 · 흥원군 · 의원군 등 5명의 군과 7명의 부수 · 부정 등을 두었으며 증손자대에도 완강군 · 순의군 · 순정군 · 순녕군 · 풍천군 등 협책 · 호성공신에 제수된 공신과 군들이 많았으며 5대손의 완창군 등과 같이 후손들이 수많은 공신 직첩으로 조선왕조의 번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완강군(完康君)의 며느리가 어린 아들 성한(星漢)을 업고 배편으로 피난, 묘동(墓洞)에 정착하여 충남 태안군 소원면 송현리에 살기 시작하였다. 그 후 6대 종손인 보(칞)가 사패지인 이곳에 낙향하여 함께 살다가 1666년(현종 7)에 사당을 건립하였다. 그 후 전란과 식민통치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다가 뜻이 깊은 종현들이 여러 차례 중수하여 유지하여 오던 중 1976년 사당터가 타성에게 매각되면서 사당과 주변이 크게 훼손되었다. 이성군 후손들은 이에 크게 각성하여 1980년 음력 10월 1일 이성군파종회를 결성하고(초대회장 吉薰) 그 동안 조상의 시향 봉향에만 급급해 오던 종친들이 1차 사업으로 사당터 환원을 위하여 모금운동을 전개, 약 200만원을 모금하여 환원교섭을 벌였으나 새 산주의 거부로 실패하였다.

2대 회장 용우(龍雨)가 취임 후 사당을 중수하고 <이성군파보>를 3년 여의 노력 끝에 완성하였다. 필훈(弼薰) 회장은 1992년 음력 10월 1일 3기 집행부를 구성, 그 동안 몇몇 종친 명의로 등기되어 있던 문중재산을 파종회 명의로 등기하고, 타성명의로 변칙 등재되어 있던 재실을 문중재산으로 환원 확보하는 등 이성군 산소 주변의 정화사업을 완료하였다. 더욱이 현재 태안군 소원면에 있는 사당은 지리적으로 외진 곳에 있어 많은 후손들이 참배하기에 큰 불편을 겪고 있고 사당터마저 남의 손에 넘어가 보수 유지가 어려운 현실이어서 이성군을 위시한 여러 선조가 계신 곳이며 후손들 수백호가 모여 사는 수도권 이성군 묘소앞 남향명당에 5년 여의 각고 끝에 웅장한 새 사당을 완공하였다.

종원 분포 상황

합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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