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흥대원군파 약사

덕흥대원군


중종대왕의 7남으로 1530년(중종 25) 음력 3월 5일 창빈안씨(昌嬪安氏)에게서 탄생, 휘는 초(山召)요 자는 경앙(景仰)이다.

덕흥대원군은 3남을 두었으니 장남은 하원군(河原君)이고 차남은 하릉군(河陵君)이다. 하릉군은 숙부 금원군(錦原君)에 출계하였고, 3남은 하성군(河城君)으로 명종대왕에 이어 입승대통(入承大統)하니 곧 14대왕 선조대왕이다.

일찍이 9세에 덕흥군(德興君)으로 책봉되고 1570년(선조 3)에 덕흥대원군으로 책봉되었다. 천성이 영명다재하여 학문과 덕을 쌓아 남다른 예지와 경륜을 펼쳐 명종 때에 이룩한 공이 컸으며 세째 아들인 선조대왕이 명종대왕의 대를 이어 왕통을 계승한 사실(史實)로 미루어 보더라도 덕행과 기지가 뛰어났음이 가히 짐작이 된다.

대원군의 배위 하동부대부인(河東府大夫人) 정씨(鄭氏)는 1522년(중종 17) 음력 9월 4일 태어났으며, 영의정 문성부원군(文成府院君) 정인지(鄭麟趾)의 증손녀이며 영의정 효간공(孝簡公) 정세호(鄭世虎)의 딸로 기품이 고고영명하고 현모양처로 그 덕망이 널리 알려졌다. 하성군을 선조대왕으로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한 것도 모친의 역량이 컸다.

대원군은 1559년(명종 14) 음력 5월 9일 30세로 별세하여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에 예장하였다. 그로부터 별칭 덕릉(德陵)이라 일컬어 왔으며 경기도 지방문화재 55호(1980.6.3)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묘의 수호를 위하여 묘막이 형성되고 지금도 묘하(墓下)의 촌락은 그대로 남아 있고 서울특별시 상계동으로부터 대원군묘로 진입하는 수락산령은 덕릉고개라 불리고 있다.

대원군의 배위 하동부대부인 정씨는 1567년(명종 22) 음력 5월 18일 46세로 별세하니 그 해 음력 8월 9일 대원군 곁 이실(異室)에 예장하였다.

후일 선조대왕의 특명으로 한성(漢城)에 도정궁(都正宮 :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동)을 세워 생친(生親) 대원군 양위와 조모 창빈안씨(中宗嬪), 백형 하원군(顯祿大夫)과 배위를 모시게 하여 각각 기신일(忌辰日)에 제향을 받들어 오던중 대원군 종손의 형편의 변동에 따라 1950년 불천지위(不遷之位) 6위를 지금의 덕릉재실(德陵齋室)로 이전, 영년봉묘(永年奉廟)케 하니, 매년 기신일이면 후손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다.

대원군의 묘역 하단에 계장으로 위치한 쌍분묘는 장남 하원군 양위분의 묘이며, 이 부락에 있는 덕흥사(德興祠)는 대원군 양위분과 어머니 창빈안씨 그리고 장남 하원군(宣祖朝의 扈從功臣) 내외분의 위패를 모신 묘각(廟閣)이며 국내(局內) 흥국사(興國寺)는 이분들의 명복을 빌던 사찰이다.

창빈안씨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묘지 내 중앙에 자리하고 있으며 서울특별시 지방문화재 54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 국립묘지는 창반안씨 묘역이었는 바 국가에서 국립묘지로 지정,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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