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남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38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언무(彦茂) 1542∼1607 파명:진남군(鎭南君)
  자는 사원(士源)이며 진남군의 5대손이다. 가선대부 이조참판 예문관제학 동지경연 춘추관사 현충(顯忠)의 장남이다.
선조 때 건원릉 참봉 · 선공감 · 통정대부 행 사헌부 감찰을 배수하였다.
선조 때 건원릉 참봉 · 선공감 · 통정대부 행 사헌부 감찰을 배수하였다.
우량(宇樑) 1599∼1637 파명:진남군(鎭南君)
  진남군의 7대손이며 통훈대부 문화현감 인현(仁賢)의 장남이다.
현감을 배수하여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하였다.
현감을 배수하여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하였다.
우정(宇禎) 1601∼1686 파명:진남군(鎭南君)
  진남군의 7대손이며 통훈대부 문화현감 인현의 차남이다.
가선대부 병조참판을 배수하였다.
가선대부 병조참판을 배수하였다.
원경(元卿) 1501∼1529 파명:진남군(鎭南君)
  자는 수초(遂初), 진남군의 현손이며 증조는 정의대부 이조참판 진례군, 조부는 정의대부 백성군, 아버지는 승헌대부 계원군 의(艤)다.
배위는 안동김씨 홍문관 박사 엄(淹)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종사해서 경서에 통달하여 1525년(중종 20) 식년시 병과에 등과하여 한림을 제수받고 이어서 세자 시강원 사서에 임명되었다. 29세로 요절했다.
배위는 안동김씨 홍문관 박사 엄(淹)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종사해서 경서에 통달하여 1525년(중종 20) 식년시 병과에 등과하여 한림을 제수받고 이어서 세자 시강원 사서에 임명되었다. 29세로 요절했다.
원돈(元敦) 1825 ∼ ? 파명:진남군(鎭南君)
  진남군의 15대손이며 증 가선대부 사복정 광문(光文)의 장남이다.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을 배수하였다.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을 배수하였다.
위(偉) 1581 ∼ ? 파명:진남군(鎭南君)
  진남군의 7대손이며 첨지중추부사 몽량의 셋째 아들이다.
세자 시강원 사서를 배수하고 통훈대부 사간원 사간을 배수하였다.
세자 시강원 사서를 배수하고 통훈대부 사간원 사간을 배수하였다.
윤문(潤文) 1634∼ ? 파명:진남군(鎭南君)
  진남군의 8대손이며 준신(俊臣)의 넷째 아들이다.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을 배수하였다.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을 배수하였다.
인석(仁錫) 1653∼1739 파명:진남군(鎭南君)
  초휘(初諱)는 계석(繼錫), 진남군의 10대손이며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 방주(邦胄)의 차남이다.
1728년(영조 4) 어모장군 행 충좌위 부사용(副司勇)을 배수, 회맹공신록(會盟功臣錄)에 서명하고 통정대부에 승계 순장(巡將)에 승진, 1732년(영조 8)에 가선대부에 승계 동지중추부사를 제수받았고 완은군(完恩君)에 추봉되었다.
1728년(영조 4) 어모장군 행 충좌위 부사용(副司勇)을 배수, 회맹공신록(會盟功臣錄)에 서명하고 통정대부에 승계 순장(巡將)에 승진, 1732년(영조 8)에 가선대부에 승계 동지중추부사를 제수받았고 완은군(完恩君)에 추봉되었다.
인현(仁賢) 1570∼1637 파명:진남군(鎭南君)
  진남군의 6대손이며 광주군수 제(堤)의 장남이다.
통훈대부 문화현감(文化縣監)을 배수하고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하였다.
통훈대부 문화현감(文化縣監)을 배수하고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하였다.
일형(日馨) 1743∼1821 파명:진남군(鎭南君)
 일형(日馨) [1743(영조 19)∼1821(순조 21)]
초휘는 일신(日新), 자는 내은(乃殷), 호는 우옹(愚翁). 진남군의 13대손이며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하중(夏重)의 장남이다.
영조 때 성균관 사예를 초수(初受)하였던 바 1762년(영조 38) 장헌세자의 변을 통탄하여 사직하고 경주에 은거하여 후학 육성에 전념하고 시문집 2권을 편찬하였으며, 손자 정돈(貞敦)이 숭정대부 행 지중추부사로 제수됨에 그 은혜로 1866년(고종 3) 증 통정대부 병조참의, 1888년(고종 25) 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
초휘는 일신(日新), 자는 내은(乃殷), 호는 우옹(愚翁). 진남군의 13대손이며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하중(夏重)의 장남이다.
영조 때 성균관 사예를 초수(初受)하였던 바 1762년(영조 38) 장헌세자의 변을 통탄하여 사직하고 경주에 은거하여 후학 육성에 전념하고 시문집 2권을 편찬하였으며, 손자 정돈(貞敦)이 숭정대부 행 지중추부사로 제수됨에 그 은혜로 1866년(고종 3) 증 통정대부 병조참의, 1888년(고종 25) 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