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산대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16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하상(夏相) 1670∼1737 파명:월산대군(月山大君)
  자는 성보(聖甫), 대군의 9대손이며 양원도정의 5대손이고 온(?)의 장남이다.
선전관에 추천되었다가 1704년(숙종 30) 무과에 급제하여 수안 · 거창 · 순천부사를 역임했다. 순천부사 재임 시 대군의 유고집인 <풍월정집>을 재판하였다.
배위는 숙부인 창녕성씨로 중광(重光)의 딸과 숙부인 풍양조씨로 상윤(尙尹)의 딸이다.
묘소는 충남 용천 구절동 감좌이다.
선전관에 추천되었다가 1704년(숙종 30) 무과에 급제하여 수안 · 거창 · 순천부사를 역임했다. 순천부사 재임 시 대군의 유고집인 <풍월정집>을 재판하였다.
배위는 숙부인 창녕성씨로 중광(重光)의 딸과 숙부인 풍양조씨로 상윤(尙尹)의 딸이다.
묘소는 충남 용천 구절동 감좌이다.
헌규(憲圭) 1759∼1833 파명:월산대군(月山大君)
  자는 문칙(文則), 호는 호은(湖隱). 대군의 13대손이며 희중(熙重)의 계자로 생부는 희적(熙勣)이다.
홍주목사 · 홍주진병마첨절제사를 지냈다. 문집 3권이 있다.
배위는 숙부인 파평윤씨로 중이(重履)의 딸과 숙부인 죽산박씨로 성급(聖伋)의 딸이다.
묘소는 대군 묘하에 있다.
홍주목사 · 홍주진병마첨절제사를 지냈다. 문집 3권이 있다.
배위는 숙부인 파평윤씨로 중이(重履)의 딸과 숙부인 죽산박씨로 성급(聖伋)의 딸이다.
묘소는 대군 묘하에 있다.
호인(好仁) 1562∼1599 파명:월산대군(月山大君)
  자는 원보(元甫), 대군의 현손이며 생부는 양원도정이다. 음사(蔭仕)로 사도시(司?寺) 주부가 되었다가 사헌부 감찰이 되었다. 품계는 봉렬대부이다.
배위는 해평윤씨 현감 철수(鐵壽)의 딸과 성주이씨 응진(應進)의 딸이다.
묘소는 대군 묘하 병좌이며 배위와 함폄이다.
배위는 해평윤씨 현감 철수(鐵壽)의 딸과 성주이씨 응진(應進)의 딸이다.
묘소는 대군 묘하 병좌이며 배위와 함폄이다.
흡(?) 1700∼1758 파명:월산대군(月山大君)
  자는 화보(和甫), 시굉의 장남으로 진사에 급제, 위수(衛率) · 진잠현감(鎭岑縣監)을 지냈다.
배위는 공인 해주오씨로 경주(經周)의 딸이다.
묘소는 대전시 기성면 흑석 갑좌이다.
배위는 공인 해주오씨로 경주(經周)의 딸이다.
묘소는 대전시 기성면 흑석 갑좌이다.
희구(熙耉) 1778∼1845 파명:월산대군(月山大君)
  자는 인옹(仁翁), 호는 일창(一蒼). 양원도정의 8대손이며 상지(尙志)의 아들이다.
통훈대부 · 산청현감 겸 전주진관병마절제도위를 지냈다.
유고집 4권이 있다.
배위는 숙인 진주강씨로 참의 익언(益言)의 딸이다. 묘소는 충남 보령시 천북면 신덕리 간좌이다.
통훈대부 · 산청현감 겸 전주진관병마절제도위를 지냈다.
유고집 4권이 있다.
배위는 숙인 진주강씨로 참의 익언(益言)의 딸이다. 묘소는 충남 보령시 천북면 신덕리 간좌이다.
희맹(希孟) 1591∼1653 파명:월산대군(月山大君)
  자는 경순(景醇), 호는 임정(林亭). 대군의 5대손이며 호인의 장남이다. 부사과 · 통훈대부 · 사헌부 집의를 역임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경기도 남양 섬안에 있다가 남한산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배를 타고 충청도 홍성으로 갔다가 다시 공주 유성으로 들어가 두문불출, 사람들과 왕래를 끊고 자손들에게 절대로 벼슬을 하지 말라고 훈계했다. 송시열 · 리경석과 교제가 깊었다.
배위는 숙부인 청주박씨로 참봉 사달(士達)의 딸이다.
묘소는 충남 공주시 탄천면 삼각리 임좌이고 합폄이다.
배위는 숙부인 청주박씨로 참봉 사달(士達)의 딸이다.
묘소는 충남 공주시 탄천면 삼각리 임좌이고 합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