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흥대원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33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세정(世禎) 1661∼1721 파명: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자는 국경(國卿). 대원군의 6대손이다. 일찍이 사마 양시에 합격하고 1699년(숙종 25) 증광전시 병과에 급제, 참봉으로 시작해서 통정대부 돈녕부도정을 지냈다. 가선대부 참판에 증직되었다.
배위는 부제학 청송심씨 유(攸)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 수락산 덕수 선영 국내 임좌이다.
배위는 부제학 청송심씨 유(攸)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 수락산 덕수 선영 국내 임좌이다.
시상(時祥) 1648∼1733 파명: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안평수의 차남으로 자는 계흥(季興), 호는 월암(月菴). 은일(隱逸) 후 통정대부 이조참의를 지냈다. 향년 86세로 별세했다.
묘소는 시흥군 군자면 월곳리 천동 진좌이다.
배위는 참봉 평산신씨 형(熒)의 딸이며 묘소는 합폄했다.
묘소는 시흥군 군자면 월곳리 천동 진좌이다.
배위는 참봉 평산신씨 형(熒)의 딸이며 묘소는 합폄했다.
안묵(安默) 1756∼ ? 파명: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자는 후오(厚五). 대원군의 7대손이며 사술의 손자이다. 생원시에 급제하고, 1790년(정조 14) 증광시 별과에 급제, 교리(校理)를 지냈다. 횡죄(橫罪)로 복법(伏法)되었다.
배위는 안동권씨 위(偉)의 딸이다.
배위는 안동권씨 위(偉)의 딸이다.
역(역) 1661∼ ? 파명: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풍래군의 손자이며 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 의금부 도사를 지냈다.
묘소는 화산 선영하 자좌이다.
배위는 군수 문화류씨 연호(燕浩)의 딸로 묘소는 전남 장성군 북일면 성산리 누태동 선영하이다.
묘소는 화산 선영하 자좌이다.
배위는 군수 문화류씨 연호(燕浩)의 딸로 묘소는 전남 장성군 북일면 성산리 누태동 선영하이다.
익한(翊漢) 1609∼1668 파명: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자는 치흠(穉欽), 호는 향파(香坡). 대원군의 현손이며 진사시에 장원하고 1651년(효종 2) 식년시 갑과에 장원급제했다. 승지 · 감사 · 참판을 지냈다. 연경에 사신으로 가다가 도중에서 별세했다.
배위는 한양조씨로 현령 국신(國信)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포천군 소흘읍 이동교리 수내 신좌이다.
배위는 한양조씨로 현령 국신(國信)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포천군 소흘읍 이동교리 수내 신좌이다.
재구(載龜) 1809∼ ? 파명: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대원군의 12대손이다. 1868년(고종 5) 종친과 정시 병과에 급제, 전적(典籍)을 지냈다.
배위는 순천박씨 능현(能鉉)의 딸이다.
묘소는 수락산 국내 을좌에 있다.
배위는 순천박씨 능현(能鉉)의 딸이다.
묘소는 수락산 국내 을좌에 있다.
재항(裁恒) 1672∼1725 파명: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자는 군망(君望). 대원군의 6대손이다.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어려서부터 몸집이 크고 뼈대가 굵어 기골이 장대하였다. 일찍이 학문에 뜻을 두어 복시(覆試)에 나아갔으나 이로움이 없으매 탄식하기를, `어버이가 늙으시고 가세 또한 가난하니, 이로써 이름을 떨치기 어렵다\'고 하며 무예를 닦아 1706년(숙종 32)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에 제수되고 비변사 낭관을 겸임하였다. 내외의 여러 벼슬을 거쳐 경상도 수군절도사가 되었다. 1724년(경종 4) 노론인 리이명(李?明)의 일파라 하여 삭탈관직되었다가, 영조대왕이 즉위하자 다시 기용되어 삼도수군통제사에 이르렀고, 풍비(風痺)로 54세에 세상을 떠났다.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깊었으며, 남의 위급함이 있으면 급히 도와주었다. 평생에 재산을 모을 줄 모르고 항상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니 모두가 나라의 그릇(國器)이라 칭송하였다. 일찍이 판서 권상유(權尙遊) · 김진규(金鎭奎)와 지우가 깊었다. 글씨를 잘 써서 당시에 이름을 떨쳤다. 작품으로는 글씨로 <리재항서첩(李載恒書帖)>이 목판으로 인간되어 전한다.
배위는 청주한씨 성기(聖耆)의 딸과 광주정씨 의창(儀昌)의 딸이다.
묘소는 충남 부여군 은산면 가풍리 기좌에 있다.
배위는 청주한씨 성기(聖耆)의 딸과 광주정씨 의창(儀昌)의 딸이다.
묘소는 충남 부여군 은산면 가풍리 기좌에 있다.
정한(挺漢) 1601∼1671 파명: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응천군의 장남으로 자는 수보(秀甫). 가선대부 동지돈녕부사를 지냈으며 71세로 별세했다.
묘소는 대원군묘 계하 건좌이다.
배위는 승지 파평윤씨 성(日星)의 딸과 선교랑(宣郞) 청송심씨 욱(홸)의 딸이며 묘소는 동3폄했다.
묘소는 대원군묘 계하 건좌이다.
배위는 승지 파평윤씨 성(日星)의 딸과 선교랑(宣郞) 청송심씨 욱(홸)의 딸이며 묘소는 동3폄했다.
조(潮) 1766∼1811 파명: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자는 여심(汝深). 대원군의 9대손이다. 진사에 합격한 뒤 1801년(순조 1) 경과(慶科) 병과에 급제, 현감을 지냈다. 부제학에 추증되었다.
배위는 고령신씨 참판 익빈(益彬)의 딸이다.
묘소는 양성 산대 유좌이다.
배위는 고령신씨 참판 익빈(益彬)의 딸이다.
묘소는 양성 산대 유좌이다.
철(철) 1660∼ ? 파명: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풍래군의 손자이며 진사로 가선대부의 봉작을 받았다.
묘소는 오마동 갑좌이다.
배위는 진사 동래정씨 홍도(弘度)의 딸로 묘소는 과천 도양리 임좌이다. 또한 배위는 교하노씨이다. 묘소는 전남 장성군 북일면 성산리 누태동 선영하이다.
묘소는 오마동 갑좌이다.
배위는 진사 동래정씨 홍도(弘度)의 딸로 묘소는 과천 도양리 임좌이다. 또한 배위는 교하노씨이다. 묘소는 전남 장성군 북일면 성산리 누태동 선영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