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대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94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인점(仁漸) 1624∼ ?    파명:안창대군(安昌大君)
  자는 여망(汝綱), 대군의 14대손, 부는 통정 금추 시망(是芒), 가선대부 부호군, 묘는 상동 건원, 배위 정부인 강릉최씨는 태성(泰成)의 딸이다.
일남(一男) 1568∼1661    파명:안창대군(安昌大君)
  자는 수부(秀夫), 호는 무헌(武軒). 대군의 10대손이며 무과 훈련첨정 득(得)의 아들로 함남 함흥 왕검도 삼평 부차리(상부리)에서 출생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백의로 창의하여 류응수(柳應秀) · 문덕교(文德敎)와 협력하여 적을 섬멸하였다. 정유재란시에는 북병을 통솔하여 직산(稷山)에서 적을 격파, 대승하였다. 이 전투에서 유시(流矢)에 부상하였다. 1592년에 무과에 급제, 1604년(선조 37)에 공이 으뜸이어서 사패급복(賜牌給復)을 받았다. 1627년(인조 5) 아미란(阿彌亂)을 당하여 양곡을 관서로 운반하여 적을 평정하는 데 공이 컸다. 1650년(효종 1)에 통정대부가 되고 1661년(현종 2) 1월 5일에 별세했다. 1797년(정조 21) 증 가선대부 호조참판이 되고 구함산지 충신록에 실렸다. 삼평사우에서 희생을 올리고 축문에 “선원보계이며 임진훈신이다. 신령스런 칼이 있는데 복수한 혈혼이 상존한다.” 하였다. 경상(卿相) 조진구(趙鎭球)와 심사동(沈師東)과 심문영(沈文永)이 훈록을 병찬할 때 모두 실었다. 수양(首陽) 김원형(金元亨)의 시가 있으며 현감 이갑삼(李甲參)이 실적을 찬하였다. 1892년(고종 28)에 자헌대부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묘소는 함남 함주군 응봉리 매봉산 채록 간원에 있으며 이곳에 비석이 있다. 배위는 증 정부인 청주한씨로 참봉 언효(彦孝)의 딸이다.
일선(日善) 1612∼ ?    파명:안창대군(安昌大君)
  대군의 11대손이며 사립(士立)의 아들이다. 가선대부 중추부사를 지냈으며 묘소는 함남 운전면 벌언동 선산 체록 손원이다. 배위는 정부인 영춘조씨로 득생(得生)의 딸이다.
재유(在츉) 1879∼1945    파명:안창대군(安昌大君)
  자는 문화(文化), 호는 백람(白嵐). 대군의 21대손 면준(冕俊)의 아들이다. 항일투쟁을 했으며 대종교 지도자로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5년 만주 길림성 감옥에서 일제의 잔인한 고문으로 순국하였다. 공은 일화도 많아 구전에는 공의 기개가 위엄하여 향리의 산중 호랑이도 기를 못펴고 험산을 다닐 때 함께 했다고 한다.
 묘소는 만주 길림성 돈화현 북산에 있고 위패와 영정은 서울 서대문구 홍은 2동 13-76 대종교 총본에 10현 영진에 봉안되었다. 배위는 신안주씨 승옥(升玉)의 딸이다.
적(迪) 1664∼ ?    파명:안창대군(安昌大君)
  대군의 14대손이며 가선대부 만남(萬南)의 아들이다. 통정대부를 지냈으며 묘소는 북청 해안 장호 손원이다. 배위는 숙부인 경주김씨로 성길(成吉)의 딸이다.
정갑(晸甲) 1779∼1852    파명:안창대군(安昌大君)
 정갑(晸甲) [1779(정조 3)∼1852(철종 3)]
 대군의 17대손이며 생부는 봉사 통정대부 춘욱(春郁)이고 양부는 지릉참봉 일옥(日玉)이다. 훈련원봉사, 가선대부였으며 묘소는 강가동 상룡 간원이다. 배위는 정부인 김해김씨로 종렬(宗烈)의 딸이다.
정발(廷發) 1631∼1718    파명:안창대군(安昌大君)
  대군의 10대손이며 통정대부 검소(儉素)의 아들이다. 통정대부에 올랐으며 묘소는 함남 함주군 운남면 운중리 송풍동 산 90번지 산 건원이고 비석이 있다. 배위는 숙부인 이천서씨로 송지(松之)의 딸이다.
 종권(宗權) [1736(영조 12)∼1798(정조 22)]
 자는 자관(子官). 대군의 14대손이며 통덕랑 덕릉참봉 영준(英俊)의 아들이다. 1764년(영조 40) 선략장군 행 용양위 부사과 훈련원참사를 역임했고 1894년(고종 30) 증 통정대부 승정원 좌부승지로 추증됐다. 묘소는 함남 함주군 운남면 운중리 송풍동 산90번지 건원, 비석이 있다. 배위는 정부인 이천서씨로 가선대부 필련(泌連)의 딸이다.
정팔(鋌八) 1865∼1913    파명:안창대군(安昌大君)
  자는 익칠(益七). 대군의 21대손이며 응주(鷹周)의 아들이고 통덕랑 용평(容平)의 손자이다. 구한말 신교육제도 실시 후 당시로서는 파격적, 여아들의 신교육에도 선도적이었고 이러한 교육을 위한 사립 함흥광진학교에 기여하였다. 효자 · 효손으로 칭송되었다. 묘는 함남 함주군 삼평면 상부리 후원이며 배위는 김씨와 정선전씨 덕겸(德謙)의 딸이다.
정현(禎賢) 1465∼ ?    파명:안창대군(安昌大君)
  대군의 5대손이며 계공랑 계하(啓夏)의 차남이다. 절충장군을 지냈다. 묘소는 함남 함주군 운남면 운중리 송풍동 90번지 산 건원이며 배위는 숙부인 밀양박씨로 기(紀)의 딸이다.
종국(鍾國) 1630∼ ?    파명:안창대군(安昌大君)
  자는 지종(之宗). 대군의 11대손이며 부는 경원(涇遠)이다. 가선대부였으며 묘소는 함남 문천군 명구면 상평리 서당동 금반형 북록 경원이다. 배위는 숙인 청주한씨로 대원(大元)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