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대군파 4세 약사에는 총 15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구성군(龜城君) 1440∼1479    파명:임영대군(臨瀛大君)
  휘는 준(浚), 자는 자준(子濬)이다. 대군의 2남이며 제안부부인(齊安府夫人) 전주최씨의 둘째 아들이다. 등준시 무과에 등과하여 장원급제하고 1467년(세조 13) 5월에 길주에서 이시애가 반란을 일으켜 위급한 상황이 되었을 때, 임금은 공을 4도병마도통사로 삼고 조석문(曺錫文)을 부장으로 삼았으므로 병사를 거느리고 반란군을 격파하여 8월에 평정하고 9월에 개선하였다.
 세조대왕은 종재(宗宰)로 서울 교외에서 마중하게 하고 술을 하사하여 위로하고 원훈을 정충출기포의적개공신(精忠出氣布義敵愾功臣)이라 내렸다. 이로 인해 이듬해 4월에 명나라 사신 강동옥(姜東玉)이 와서 공에게 비단 세 필을 예물로 주었다. 1468년(세조 14) 특별히 영의정을 삼았다.
 그러나 1470년(성종 1)에 무고죄로 경북 영덕군 영해면 영해부로 귀양갔다. 정희왕후(貞熹王后)는 세조대왕의 지극한 총애를 받던 왕손이 모함당한 것을 애처롭게 여겨 음식과 약재를 갖추어 내려주었다. 불행히도 후사가 없이 그곳에서 1479년(성종 10) 생애를 마쳤다. 1687년(숙종 13) 참판 리선(李選)이 상소하여 신원을 간청하여 훈작이 회복되었다.
 1854년(철종 5)에 황제의 특명으로 정양군(定陽君) 순(淳)의 11대손 해상(海尙)을 봉사손으로 정하고 1900년(광무 4) 고종황제는 부조지전을 베풀고 `충무(忠武)\'란 시호를 추증하였다.
 배위는 천안군부인(天安郡夫人) 청주한씨로 좌의정 백륜(伯倫)의 딸이다.
당은군(唐恩君) 1495∼ ?    파명:임영대군(臨瀛大君)
덕림군(德林君) 1482∼1541    파명:임영대군(臨瀛大君)
봉산군(鳳山君) 1469∼1519    파명:임영대군(臨瀛大君)
영양군(英陽君) 1458∼1526    파명:임영대군(臨瀛大君)
오산군(烏山君) 1437∼1490    파명:임영대군(臨瀛大君)
운양도정(雲陽都正) 1529∼1591    파명:임영대군(臨瀛大君)
윤산군(輪山君) 1462∼1547    파명:임영대군(臨瀛大君)
임영대군(臨瀛大君) 1420∼1469    파명:임영대군(臨瀛大君)
절신군(節愼君) 1546∼1594    파명:임영대군(臨瀛大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