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응대군파 4세 약사에는 총 2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청풍군(淸風君) 1460∼1505    파명:영응대군(永膺大君)
  청풍군(淸風君) [1460(세조 5)∼1504(연산군11)]
휘는 원(源), 자는 달지(達之). 대군의 외아들이며 어머니는 연성부부인 연안김씨이다. 처음 가선대부로 오위도총부 도총관이었으나 도제조를 역임하여 흥록대부에 올랐다. 배위는 현국부부인(縣國府夫人) 배천조씨로 판중추부사 원지(元祉)의 딸이고, 군국부부인(郡國府夫人) 무송윤씨로 목사 증직제학 자영(子榮)의 딸이다. 묘소는 시흥군 동면 봉천리 청릉촌 오좌였으나 1968년 시흥시 군자동 대군의 묘하로 이장했다.
영응대군(永膺大君) 1434∼1467    파명:영응대군(永膺大君)
  영응대군(永膺大君) [1434(세종 16)∼1467(세조 13)]
 휘는 염(琰), 시호는 경효(敬孝). 세종대왕의 제8남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이다. 1441년(세종 23) 영응대군에 봉해지고, 1443년에 역양대군(歷陽大君), 1447년에 영응대군으로 개봉(改封)되었다. 배위는 해주정씨 참판 충경(忠敬)의 딸과 여산송씨 판중추(判中樞) 복원(復元)의 딸이다.
 부왕의 총애가 지극하였으며, 1450년 부왕인 세종대왕도 그의 저택인 동별궁(東別宮)에서 승하하였다.
 1463년(세조 9) <명황계감(明皇誡鑑)>의 가사를 한글로 번역하였고, 글씨와 그림에 능하고 음률(音律)에도 통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