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군파 4세 약사에는 총 2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계양군(桂陽君) 1427∼1464    파명:계양군(桂陽君)
  계양군(桂陽君) [1427(세종 9)∼1464(세조 10)]
 자는 현지(顯之), 시호는 충소(忠昭). 1455년(세조 1) 좌익공신에 책록되었고 1464년(세조 10) 8월 15일 별세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묘적산(妙寂山) 신좌이다.
 대제학 서거정이 쓴 신도비에는 “왕실의 영명(英明)한 주손(胄孫)으로 일찍이 금성대군의 참화와 영풍군·한남군의 발자취를 감추고 시사(時事)를 들으려 하지 않고 숨어버리며 의(義)에 불가하다 하여 책훈(策勳)함에 사양하고 회연에도 참석하지 아니하며 마치 가난한 선비와 같이 살았다.”고 적혀 있다.
 배위는 정선군부인(旌善郡夫人) 청주한씨로 좌의정 서원부원군 확(確)의 딸이며 묘소는 충소공 조우록(兆右폍)이다.
부림군(富林君) 1458∼1489    파명:계양군(桂陽君)
  부림군(富林君) [1458(세조 4)∼1489(성종 20)]
 휘는 식(湜), 자는 낭옹(浪翁), 호는 사우정(四雨亭), 계양군의 3남이다.
 공은 일찍이 시문에 능하였고 명창(名唱)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30세로 요절하였다.
 공의 시집인 <사우정집>은 1500년(연산군6) 아들 철(轍)이 편집, 간행하였다. 현재 국내에는 상권이 전하지 않아 서문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며, 하권 끝에 강혼(姜渾)과 철의 발문이 있다. 자연이나 계절, 증별(贈別) 등이 주요한 시제(詩題)를 이루고 있으며, <수려서회(守廬書懷)>·<진관상방증광상인(津寬上方贈狂上人)>·<송문연지유령남(送文淵之遊嶺南)> 등의 시제가 보이는데 모두 작자의 서정세계를 형상화한 수작(秀作)들이다. 본서는 조선 초기의 한시를 연구하는데 참고자료가 된다. 규장각도서에 필사본 하책이 있고, 고려대학교 만송문고(晩松文庫)에 목판본 하책이 소장되어 있으며, 완본은 일본 봉좌문고(蓬左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배위는 현부인 안동김씨로 좌의정 상낙부원군 질(?)의 딸이다.
 묘소는 계양군묘 좌록 유좌이며 현부인과 합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