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언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15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계영(繼榮) 1595∼1677 파명:임언군(林堰君)
  임언군의 6대손이며 극명(克明)의 장남이다.
사간원 대사간(大司諫)을 지냈고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의 증직을 받았다. 묘소는 부평군 동수정면 봉산리에 있으며, 배위는 숙부인 남양홍씨로 진사 호조좌랑 식(?)의 딸이다.
사간원 대사간(大司諫)을 지냈고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의 증직을 받았다. 묘소는 부평군 동수정면 봉산리에 있으며, 배위는 숙부인 남양홍씨로 진사 호조좌랑 식(?)의 딸이다.
담령(聃齡) 1624∼ 1691 파명:임언군(林堰君)
  자는 이실(而實), 호는 정절(貞節). 임언군의 7대손이며 제형(際亨)의 1남이다. 음직으로 사헌부 직장으로 있을 때 문과에 급제, 홍문관(弘文館) 교리(敎理)를 지냈고 승정원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오르고 또한 사헌부 대사헌(大司憲)을 거쳐 자헌대부 겸 한성부 판윤(判尹)을 지냈다. 묘소는 장단군 진동면 초리 내촌에 있으며 배위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연안이씨로 첨지 흥종(興宗)의 딸이며 묘소는 쌍조하였다.
명복(命復) 1694∼1762 파명:임언군(林堰君)
  자는 세복(世復), 임언군의 9대손이며 정욱(挺郁)의 2남이다.
비록 가빈(家貧)하나 천성이 순후(順厚)하고 평소 글읽기를 좋아하여 수불석권(手不釋卷)하였으며 음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 행 용양위 호군을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남방리에 있었으나 실전되었다.
배위는 정부인 광주안씨이며 합장한 묘가 실전되었다.
비록 가빈(家貧)하나 천성이 순후(順厚)하고 평소 글읽기를 좋아하여 수불석권(手不釋卷)하였으며 음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 행 용양위 호군을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남방리에 있었으나 실전되었다.
배위는 정부인 광주안씨이며 합장한 묘가 실전되었다.
사기(師夔) 1692∼1754 파명:임언군(林堰君)
  자는 일경(一卿). 임언군의 9대손이며 중엽(重燁)의 장남이다.
1723년(경종 3) 문과 병과에 급제, 진잠현감(鎭岑縣監), 공주진관(公州鎭官)을 지냈다. 묘소는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 산59번지 운주산 묘좌에 있으며 배위는 의인(宜人) 경주김씨로 하익(夏翼)의 따님이다. 묘소는 연기군 소정면 대곡리 산 29번지 고려산 남정 계좌에 있다.
1723년(경종 3) 문과 병과에 급제, 진잠현감(鎭岑縣監), 공주진관(公州鎭官)을 지냈다. 묘소는 연기군 전의면 신정리 산59번지 운주산 묘좌에 있으며 배위는 의인(宜人) 경주김씨로 하익(夏翼)의 따님이다. 묘소는 연기군 소정면 대곡리 산 29번지 고려산 남정 계좌에 있다.
상록(尙綠) 1568~1622 파명:임언군(林堰君)
 임언군의 5대손이며 가시(嘉施)의 아들이다.
선무원종일등훈신(宣武原從一等訓臣)의 공을 세워 훈련원도정(訓鍊院都正) 정삼품 당상관(正三品 堂上官)의 벼슬을 지냈다.
배위는 안산 김씨로 첨추(僉樞) 정호(禎豪)의 따님이다. 묘소는 실전되어 공주시 정안면 상룡리에 제단을 세웠다.
선무원종일등훈신(宣武原從一等訓臣)의 공을 세워 훈련원도정(訓鍊院都正) 정삼품 당상관(正三品 堂上官)의 벼슬을 지냈다.
배위는 안산 김씨로 첨추(僉樞) 정호(禎豪)의 따님이다. 묘소는 실전되어 공주시 정안면 상룡리에 제단을 세웠다.
성모(聖謨) 1818∼ 1885 파명:임언군(林堰君)
  임언군의 13대손, 종광(種洸)의 아들이다.
음직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겸 동돈양(同敦壤) 완양군(完陽君)에 봉해졌다. 묘소는 연기군 전의면 여랑리 하만의실에 있었으나 예산군 고덕면 몽곡리 805-11번지에 제단을 세웠다. 배위는 정부인(貞夫人) 청해 이씨로 승렬(承烈)의 따님이다. 묘소는 합설이다.
음직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겸 동돈양(同敦壤) 완양군(完陽君)에 봉해졌다. 묘소는 연기군 전의면 여랑리 하만의실에 있었으나 예산군 고덕면 몽곡리 805-11번지에 제단을 세웠다. 배위는 정부인(貞夫人) 청해 이씨로 승렬(承烈)의 따님이다. 묘소는 합설이다.
세용(世龍) 1642∼1705 파명:임언군(林堰君)
  임언군의 7대손이며 계남(繼男)의 2남이다. 가선대부 겸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새이리에 있다.
원모(元謨) 1810∼ ? 파명:임언군(林堰君)
 원모(元謨) [1810(순조 10)∼ ? ]
임언군의 13대손이며 종철(種喆)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지냈다. 묘소는 전의군 북면 고성하에 있다.
임언군의 13대손이며 종철(種喆)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지냈다. 묘소는 전의군 북면 고성하에 있다.
응대(應大) 1786∼ ? 파명:임언군(林堰君)
  임언군의 12대손, 행덕(行德)의 계자이다.
가선대부 겸 호조참판,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자헌대부 겸 호조판서를 지냈다.
묘소는 장단군 진동면 초리에 있으며 배위는 정부인 요산이씨로 동옥(東玉)의 딸이다. 묘는 합장하였다.
가선대부 겸 호조참판,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자헌대부 겸 호조판서를 지냈다.
묘소는 장단군 진동면 초리에 있으며 배위는 정부인 요산이씨로 동옥(東玉)의 딸이다. 묘는 합장하였다.
인용(仁容) 1780∼1871 파명:임언군(林堰君)
  임언군의 12대손이며 명규(明奎)의 1남이다.
숭정대부 겸 행 지중추부사를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기산리 기곡 후원에 있으며 배위는 정부인 진보이씨로 언성(彦成)의 딸이다. 묘는 합장했다.
숭정대부 겸 행 지중추부사를 지냈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 기산리 기곡 후원에 있으며 배위는 정부인 진보이씨로 언성(彦成)의 딸이다. 묘는 합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