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령군파 약사

혜령군


태종대왕의 5남으로 1407년(태종 7) 3월에 태어나 1440년(세종 22) 6월 25일 34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휘는 지(祉), 자는 선여(善餘), 호는 동계(桐溪). 세종대왕으로부터 양회(襄懷)라는 시호를 받았다. `양(襄)'은 생존시 국사에 큰 공로가 있었음[인사유공(因事有功)]을 뜻하며, `회(懷)'는 장수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음을 안타까워 한다는 내용[조요불수(早夭不壽)]으로 동생 혜령군에 대한 세종대왕의 따뜻하고 섬세한 배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묘소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이의동 산243번지 경좌에 자리잡고 있다. 처음에는 수원시 동문 안쪽의 자좌에 묘소를 정하였는데, 3년 후 세종대왕의 특명에 따라 현재 위치에 모시게 되었다.

배위 낙안군부인(樂安郡夫人) 무송윤씨는 1405년(태종5)에 태어나 1442년(세종 24)에 별세하였다. 묘소는 혜령군 묘소에 쌍분으로 부좌에 모셨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혜령군은 어린 시절 매우 호방하고, 외향적인 성품으로 사냥과 함께 무(武)를 연마하기를 즐겼다. 1438년(세종 20) 혜령군의 나이 32세 때 정월에 왕명으로 중국으로 보내는 사신인 계품사(計稟使)를 임명함에 있어 혜령군을 정사(正使)로, 예조판서 권제(權提)를 부사(副使)로 삼았다. 세종대왕은 친히 모화관에 나와 전별(餞別)하면서 입자(笠子)와 이엄(耳掩)을 하사했다. 그 해 5월 혜령군과 예조판서 권제가 계품사의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 세종대왕은 어체미령(御體未寧)하여 왕세자에 명하여 백관을 거느리고 사정전에 나가 계품사 일행을 영접케 하고 안마(鞍馬)와 전(田) 50결(結)과 노비 5구(口)를 혜령군에게 하사하였다. 이는 황희(黃喜)의 간언에 의한 것이라고 하니 혜령군에 대한 세종대왕의 신임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1440년(세종 22) 젊은 나이로 혜령군이 별세하자 세종대왕은 매우 상심하여 수라도 들지 않고, 애통해 하였다고 한다. 폭서와 몸의 피로로 인해 거둥하기 불편하므로 직접 거애(擧哀)하기가 불가하다는 신하들의 권고도 물리치고 홍례문 밖까지 거둥하여 머리를 풀고 발상하였으며, 3일간 정사를 철폐하고 관곽을 비롯한 각종 곡식과 포목을 하사하는 등 최대한의 예를 갖추어 장례하도록 하였다. 세종대왕이 내린 제문에는 혜령군의 죽음을 애통해 하고, 혼백을 위로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그 이듬해 세종대왕은 혜령군의 묘소에 치제하였으며, 1443년(세종 25)에는 혜령군의 외아들 수(洙)를 예천군(醴泉君)으로 봉하였다.

혜령군은 슬하에 외아들 예천군과 딸 셋을 두었다. 예천군은 정2품 승헌대부에 올랐으며 배위는 현부인(縣夫人) 원주원씨이다.

예천군은 아들 셋을 두었는데, 종손인 축산군(竺山君) 효식(孝植) · 서성부정(瑞城副正) 덕식(德植) · 석산부수(石山副守) 선식(善植)이다.

축산군은 슬하에 문희정(聞喜正) 만년(萬年) · 구천수(龜川守) 억년(億年) · 산양수(山陽守) 조년(兆年) · 소산령(小山令) 수년(壽年) · 수등령(首登令) 순년(舜年) · 영풍령(永豊令) 송년(松年)의 6남을 두었고 8녀를 두었다. 그 중 종손인 문희정은 정3품 당상 품계인 도정 명선대부에 이르렀고, 배위는 신부인(愼夫人) 안동권씨로 생전에 현감을 지내고 사후 참판으로 추증된 석(錫)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원당 수곡산 병좌에 배위와 상하에 모시었다.

문희정은 3남을 두었는데, 윤관(允寬)은 부친의 음덕으로 참봉을 지냈다. 윤관은 외아들 구(球)를 두었고, 구 역시 외아들 계수(繼壽)를 두었고, 계수는 덕원(德源)과 경원(慶源) 두 아들을 두었다. 장남 덕원은 외아들 진방(盡邦)을 두었으며, 진방 역시 외아들 익삼(益三)을 두었다. 익삼은 외아들 인영(寅英)을, 인영은 외아들 욱(?)을, 욱은 외아들 재각(載珏)을 두었다. 축산군 때부터 이 때까지 선묘(先墓)가 줄곧 경기도 고양시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3세부터 14세까지 이곳을 지역적 연고로 하여 살아 온 듯하다. 14세손 재각 역시 외아들 성석(聖錫)을 두었는데, 생부는 최다.

묘소는 충남 논산시 석성 정지촌(石城定址村)에 있다. 성석은 외아들 택록(澤祿) (초휘 : 種祿)과 1녀를 두었다. 택록의 묘 역시 부친 선영 근방에 있는데, 택록은 딸만 둘로 아들이 없어 아우인 택승(澤承)으로부터 양자를 들였다. 양자인 창동(昌東)은 희세(熙世) · 희원(熙元) · 희신(熙臣) · 희준(熙俊) 등 5남과 3녀를 두었다. 그 중 종손인 희세는 별세하여 논산시 벌곡면에 묘를 모셨고, 그 외아들인 병기(秉基)가 현재 종손이나 6·25전쟁 때 행방불명되어 희세의 아우인 희원(熙元)이 현재 경기도 금촌에 살면서 실질적인 종손으로서 역할과 활동을 하고 있다가 1997년에 별세하였다. 희원은 슬하에 윤기(允基) · 덕기(德基) · 창기(昌基) · 용기(龍基) · 현기(賢基) 등 5남과 2녀를 두고 있는데, 그 중 종손인 윤기는 경찰 공무원으로 근무 중이며, 아들 호일(鎬一)과 딸 현순(賢順) 등 남매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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