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전군파 약사

은전군 찬(? : 1759∼1778)


장조의황제의 3남으로 어머니는 귀인(貴人) 박씨이다. 1776년(영조 52) 종부시 제조(提調)로서 <선원보략>에 발문을 썼다.

1776년(영조 52) 홍인한(洪麟漢 : 1722∼1776) · 정후겸(鄭厚謙 : 1749∼1776) 등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고, 1777년(정조 1) 홍술해(洪述海 : 1722∼1777)의 아들 홍상범(洪相範 : ?∼1777) 등이 밤낮으로 나라를 원망하면서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강용휘(姜龍輝) 등과 공모하여 정조대왕을 시해하고 은전군을 왕으로 세우려 했다. 그래서 장사 전흥문(田興文)에게 비수를 품고 대궐로 들어가게 했는데 수문장에게 잡혀 포도청에 끌려가 문초를 당하자 모든 것이 드러나 홍상범 등 일당이 모두 잡혀 죽음을 당했다. 이에 삼사(三司) · 대신 · 종친들이 번갈아 상소하여 은전군을 죽이라고 했으나 정조대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신들이 더욱 강하게 우기니 부득이 사사하였다.

이렇게 은전군은 1778년(정조 2) 19세에 죽으니 후사가 없어 은언군의 차남 풍계군 당(쩪)을 양자로 삼았다. 그러나 이 풍계군도 아들이 없어 경창군(慶昌君)의 9대손 승응(昇應 : 1836∼?)을 입계하여 완평군(完平君)에 봉했다.

이 완평군 승응이 4남을 두니 장남은 인양군(仁陽君) 재근(載覲 : 1857∼1896)이요, 차남 재현(載現 : 1870∼?)은 경창군 생가의 숙부 낙응(洛應)의 양자가 되었으며, 3남 의양군(義陽君) 재각(載覺 : 1874∼?)은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부제학 · 궁내부 특진관을 지내고, 1902년(광무 6) 특사로 영국 여왕 대관식에 다녀오고 1905년(광무 9) 우리 나라 최초의 적십자사 총재가 되었다. 그리고 4남 재규(載 : 1877∼?)는 참봉을 거쳐 1899년(광무 3) 예양령(禮陽令)에 봉해졌다.

그러나 오늘날 은전군파보가 없어 후손의 분포나 인물들을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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