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전군파 4세 약사에는 총 1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의양군(義陽君) 1873∼?    파명:은전군(恩全君)
  휘는 재각(載覺), 은전군의 증손이고 완평군(完平君) 승응(昇應)의 아들이다.
 1891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895년 비서감 좌비서랑(찅書監左찅書郞)이 되었다. 이듬해에는 경연원시독(經筵院侍讀) · 왕태궁시독관(王太宮侍讀官)을 거쳐, 1897년 중추원3등의관(中樞院三等議官)이 되었고, 1898년에는 시강원시독관과 비서승(찅書丞)이 되었다. 1899년에는 규장각직학사(奎章閣直學士)를 비롯하여 황태자궁 시강원부첨사(皇太子宮侍講院副詹事) · 홍문관부학사 등을 역임하고, 의양도정(義陽都正)에 봉해졌다가 이어 의양군(義陽君)으로 진봉(進封)된 뒤 궁내부특진관으로 보임되었다. 1902년 1월에는 특명영국대사로 임명되    어 영국황제 대관식에 참석하여 견식을 넓히기도 하였다.
 1903년에는 전선사제조(典膳司提調)가 되고, 이듬해에는 군부포공국장(軍部砲工局長)이 되어 신식군대 양성에 일익을 담당하였고, 1905년에는 종정원경(宗正院卿)에 이르렀다. 또한, 이해 특명일본국대사가 되어 일본에 다녀오고, 7월에는 한국적십자사총재에 취임하였다. 재임간 훈1등태극장(勳一等太極章)을 비롯하여 대훈이화장(大勳李花章) · 서봉장(瑞鳳章), 그리고 최고의 훈격인 대훈금척장(大勳金尺章)이 수여되었으며, 한편 외국훈장으로는 일본의 욱일동화대수장(旭日桐花大綬章)이 수여되었다. 1910년 이후에는 일본정국에 의하여 후작(侯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