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해군파 4세 약사에는 총 32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춘성수(春城守) ? ∼ ? 파명:영해군(寧海君)
  춘성수(春城守) [ ? ∼ ? ]
휘는 이(怡), 자는 백화(伯和). 청화수의 장남. 어머니는 신인 송씨이다. 품계는 창선대부에 올랐다.
기묘사화와 신사무옥 사건으로 백부 시산군이 순절하였을 때 그 여파로 이력과 생졸연대가 모두 실전되었다.
배위는 신인 전의이씨이고 2남 1녀를 두었다.
묘소는 전북 남원시 운봉읍 장교리(여원재)에 양위 합폄이다.
휘는 이(怡), 자는 백화(伯和). 청화수의 장남. 어머니는 신인 송씨이다. 품계는 창선대부에 올랐다.
기묘사화와 신사무옥 사건으로 백부 시산군이 순절하였을 때 그 여파로 이력과 생졸연대가 모두 실전되었다.
배위는 신인 전의이씨이고 2남 1녀를 두었다.
묘소는 전북 남원시 운봉읍 장교리(여원재)에 양위 합폄이다.
평성수(平城守) 1531∼ ? 파명:영해군(寧海君)
  평성수(平城守) [1531(중종 26)∼ ? ]
휘는 질(?), 완천군의 3남이며 어머니는 현부인 창녕성씨이다. 품계는 창선대부에 올랐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의 피화로 인하여 표명덕행의 기록이 실전되어 별세연도를 알 수 없다.
배위는 신부인 남양홍씨와 신부인 파평윤씨이며 1남을 두었다.
묘소는 서울 도봉구 도봉동 산81의 1에 3위 함께 묘비와 상석이 있다.
휘는 질(?), 완천군의 3남이며 어머니는 현부인 창녕성씨이다. 품계는 창선대부에 올랐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의 피화로 인하여 표명덕행의 기록이 실전되어 별세연도를 알 수 없다.
배위는 신부인 남양홍씨와 신부인 파평윤씨이며 1남을 두었다.
묘소는 서울 도봉구 도봉동 산81의 1에 3위 함께 묘비와 상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