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대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56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팽년(彭年) ? ∼ ? 파명:양녕대군(讓寧大君)
 팽년(彭年) [ ? ∼ ? ]
승정원 좌승지 상(祥)의 아들로,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행 통정대부 이성현감(利城縣監)을 지냈다. 증 가선대부에 올랐다.
승정원 좌승지 상(祥)의 아들로,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행 통정대부 이성현감(利城縣監)을 지냈다. 증 가선대부에 올랐다.
항선(恒善) 1848∼1929 파명:양녕대군(讓寧大君)
 항선(恒善) [1848(헌종 14)∼1929]
대군의 15대손이며 추성수의 12대손이다. 성품이 강경하고 강직하며 부정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다. 전북 정읍에서 면암 최익현과 항일활동을 하다가 많은 옥고를 치렀으며 그 외에도 국가와 종중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대군의 15대손이며 추성수의 12대손이다. 성품이 강경하고 강직하며 부정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다. 전북 정읍에서 면암 최익현과 항일활동을 하다가 많은 옥고를 치렀으며 그 외에도 국가와 종중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해선(海善) 1779∼1837 파명:양녕대군(讓寧大君)
 해선(海善) [1779(정조 3)∼1837(헌종 3)]
자는 박함(泊涵), 호는 춘곡(春谷). 증 자헌대부 원규(遠揆)의 아들로 1828년(순조 28) 서사(筮仕). 행 통훈대부 평택현감, 증 숭정대부 지종경부사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 홍천진영(洪川鎭營)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에 올랐다.
자는 박함(泊涵), 호는 춘곡(春谷). 증 자헌대부 원규(遠揆)의 아들로 1828년(순조 28) 서사(筮仕). 행 통훈대부 평택현감, 증 숭정대부 지종경부사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 홍천진영(洪川鎭營)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에 올랐다.
현당(賢?) 1510∼ ? 파명:양녕대군(讓寧大君)
 현당(賢?) [1510(중종 5)∼ ? ]
자는 언직(彦直), 해평부령(海平副令) 자례(自禮)의 계자이며 생부는 수주정(樹州正) 원인(元仁). 1532년(중종 27) 문과 갑과에 장원하여 사헌부 집의, 충주목사, 공주진관(公州鎭管)을 지내고 증 통정대부가 되었다.
자는 언직(彦直), 해평부령(海平副令) 자례(自禮)의 계자이며 생부는 수주정(樹州正) 원인(元仁). 1532년(중종 27) 문과 갑과에 장원하여 사헌부 집의, 충주목사, 공주진관(公州鎭管)을 지내고 증 통정대부가 되었다.
희규(禧奎) 1680∼1742 파명:양녕대군(讓寧大君)
 희규(禧奎) [1680(숙종 6)∼1742(영조 18)]
좌승지 도항(道恒)의 아들이며 증 호조참판이 되고 완성군(完成君)에 봉해졌다.
좌승지 도항(道恒)의 아들이며 증 호조참판이 되고 완성군(完成君)에 봉해졌다.
희손(希孫) 1497∼1566 파명:양녕대군(讓寧大君)
 희손(希孫) [1497(연산군 3)∼1566(명종 21)]
자는 공망(公望), 보안부정 수남의 아들이며, 1531년(중종 26)에 생원에 급제, 1533년(중종 28)에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에 오르고, 1554년(명종 9) 광주목사(光州牧使)로 부임하여 이듬해 왜적이 호남 연변성을 침략할 때 공이 강진(康津)을 방어하였으나 견책(譴責)을 받고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1556년(명종 11)에 왜적이 제주도를 침략하자 공이 종군하여 대승을 하여 그 공으로 군공(軍功) 1등에 올라 한양으로 돌아왔다. 그후 가선대부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자는 공망(公望), 보안부정 수남의 아들이며, 1531년(중종 26)에 생원에 급제, 1533년(중종 28)에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에 오르고, 1554년(명종 9) 광주목사(光州牧使)로 부임하여 이듬해 왜적이 호남 연변성을 침략할 때 공이 강진(康津)을 방어하였으나 견책(譴責)을 받고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1556년(명종 11)에 왜적이 제주도를 침략하자 공이 종군하여 대승을 하여 그 공으로 군공(軍功) 1등에 올라 한양으로 돌아왔다. 그후 가선대부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