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평대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168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명연(明淵) 1758∼1803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명연(明淵) [1758(영조 34)∼1803(순조 3)]
 자는 원량(元亮), 호는 구포(瞿圃). 대군의 14대손이며 대사헌 완성군(完成君) 의행(義行)의 아들이다.
 장사랑(將仕郞)으로서 1790년(정조 14) 증광 문과에 급제, 영흥부사를 역임하였다. 문명이 높았으며 유고로 <구포집(瞿圃集)>이 있다.
 묘소는 가평 감천면 감전 사좌에 있다.

명준(命俊) 1722∼1789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명준(命俊) [1722(경종 2)∼1789(정조 13)]
 초휘는 정준(廷俊), 자는 우경(虞卿). 대군의 12대손이며 증 참판 세충(世忠)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성품이 넓고 너그러워 여러 사람들이 성장하면 큰 인물이 되겠다고 하였다.
 1750년(영조 26) 온양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제주총관이 되고 이어 승지를 역임하고 한성부 우윤에 이르렀다. 관직에 있으면서 매사를 처리하는 데 바르고 밝았으며 또한 청백하여 명신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또한 문한가(文翰家)로서도 이름이 나 문집을 남기었다.

명중(明中) 1712∼1789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명중(明中) [1712(숙종 38)∼1789(정조 13)]
 자는 상취(尙聚), 대군의 12대손이며 영의정 유(濡)의 손자이다. 1741년(영조 17) 진사가 되어 음보로 참봉을 거쳐 호조좌랑 · 강서현감 · 금성현령 · 황주목사 등을 역임하고 1759년(영조 35) 진주목사에 이어 예천군수 · 이천부사 · 나주목사 등을 거쳐 1779년(정조 3) 광주부윤으로 부임하여 퇴락한 남한산성을 개축하여 그 공으로 품계가 올라 홍충도(洪忠道 : 충청도의 별칭)관찰사에 특진되었으나 곧 사퇴, 뒤에 동지돈녕부사 · 동지의금부사를 역임하였다.

명하(命夏) 1878∼1921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명하(命夏) [1878(고종 15)∼1921]
 호는 몽학(夢鶴), 대군의 16대손이며 비서감승(찅書監丞) 인규(寅奎)의 계자이다. 류인석(柳麟錫 : 1842∼1915) 선생에게서 사사하였다. 1907년(순종 1) 류인석 등과 의병을 일으켜 소모장으로 있으면서 친일파인 청풍 · 단양 · 영춘군수를 살해하고 1919년 3 · 1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 남만주 안동현 두도구(頭道溝) · 삼도구(三道溝)에 있는 독립군 제3지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일본경찰대 하야(河野) · 강촌(岡村) 등을 살해하고 삼도구 중국인 집에서 투숙 중 일본경찰 30여 명의 습격을 받자 교전하다가 안중석(安重錫) · 백학원(白學源) 등 독립군과 함께 전사하였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수여되었다.
 묘소는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묘소번호 12호.
목연(穆淵) 1785∼1854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목연(穆淵) [1785(정조 9)∼1854(철종 5)]
 자는 백춘(伯春), 호는 소소(笑笑), 시호는 문정(文貞). 대군의 14대손이며 증 판서 의상(義常)의 아들이다. 1821년(순조 21) 정시 문과에 급제, 1827년(순조 27) 사헌부 지평이 되고, 그 후 이조참의 · 승지 · 이조참판 · 한성부 판윤을 역임하고 1843년(헌종 9) 동지사 겸 사은사로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47년(헌종 13) 대사헌으로서 조병현(趙秉鉉)을 탄핵한 상소문 중 익종에 대한 불경한 어구가 있다 하여 임자도에 안치된 뒤 무주에 양이(量移)되었다가 이듬해 풀려 나왔다. 1851년(철종 2) 형조판서가 되고 이어서 광주유수 · 호조판서 · 전라도 관찰사 · 대사헌 등을 역임, 1854년(철종 5) 치사하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동년 12월에 별세하니 향년 70세이다.

민중(敏中) 1694∼1753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민중(敏中) [1694(숙종 20)∼1753(영조 29)]
 대군의 12대손이며 사간원 헌납 현량(顯良)의 아들이다.
 진사시에 급제하여 세자익위사 위수를 역임하였다. 문명이 높았으며 저서 15권이 있다.
 묘소는 충남 홍성군 금마면 화양금굴에 있다.
민하(民夏) 1850∼ ?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민하(民夏) [1850(철종 1)∼ ? ]
 자는 택세(宅世), 대군의 16대손이며 우참찬 인설(寅卨)의 아들이다.
 부사과로 재임시 1891년(고종 28)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직을 거쳐 비서원 비서승을 역임하였다.
 묘소는 도동면 지사곡 자좌에 있다.

백하(伯夏) 1838∼1924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백하(伯夏) [1838(헌종 4)∼1924]
 대군의 16대손이며 인화(寅化)의 아들이다.
 문명이 매우 높아 음보로 통정대부에 올라 비서승을 역임하였다.

범구(範九) 1879∼1939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범구(範九) [1879(고종 16)∼1939]
 대군의 17대손이며 충북관찰사 희하(熙夏)의 계자로 생부는 종정원경 재하(宰夏)이다.
 음보로 궁내부 협판을 역임하였다.
 묘소는 서울시 강남구 수서동 광수산 선영에 있다.

범구(範龜) 1858∼1921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범구(範龜) [1858(철종 9)∼1921]
 자는 여문(汝文), 호는 유연(游蓮). 대군의 17대손이며 주사 석하(錫夏)의 아들이다.
 학자로서, 유고로 문집 <유연집(游蓮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