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평대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168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범창(範昌) 1854∼ ?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범창(範昌) [1854(철종 5)∼ ? ]
대군의 17대손이며 명하(命夏)의 계자로 생부는 장하(章夏)이다.
진사시를 거쳐 1887년(고종 24) 정시 문과에 급제, 승지를 역임하였다.
묘소는 진위 고두면 율포 후록 선영 임좌에 있다.
범창(範昌) [1854(철종 5)∼ ? ]
대군의 17대손이며 명하(命夏)의 계자로 생부는 장하(章夏)이다.
진사시를 거쳐 1887년(고종 24) 정시 문과에 급제, 승지를 역임하였다.
묘소는 진위 고두면 율포 후록 선영 임좌에 있다.
범홍(範弘範弘) 1861∼ ?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범홍(範弘) [1861(철종 12)∼ ? ]
자는 성의(聖毅), 대군의 17대손이며 이조참판 응하(應夏)의 계자로 생부는 상하(常夏)이다.
1889년(고종 26) 알성 문과에 급제, 비서원 승지를 역임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진수동 선영에 있다.
자는 성의(聖毅), 대군의 17대손이며 이조참판 응하(應夏)의 계자로 생부는 상하(常夏)이다.
1889년(고종 26) 알성 문과에 급제, 비서원 승지를 역임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진수동 선영에 있다.
봉연(鳳淵) 1794∼1861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봉연(鳳淵) [1794(정조 18)∼1861(철종 12)]
자는 익경(翼卿), 대군의 14대손이며 의립(義立)의 아들이다. 학자로서 명망이 높았으며 유고가 있다.
자는 익경(翼卿), 대군의 14대손이며 의립(義立)의 아들이다. 학자로서 명망이 높았으며 유고가 있다.
봉조(鳳祚) 1794∼ ?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대군의 11대손이며 필복(必馥)의 아들이다.
명문의 후예로서 학식과 덕망이 높아 음보(陰補)로 여러 청환직을 거쳐 승정원 좌승지에 이르렀다.
명문의 후예로서 학식과 덕망이 높아 음보(陰補)로 여러 청환직을 거쳐 승정원 좌승지에 이르렀다.
사조(思祚) 1729∼1801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자는 자급(子伋), 대군의 11대손이며 중추부 동지사 필운(泌運)의 아들이다. 1756년(영조 32) 진사시에 합격하고 1764년(영조 40) 강화 별시문과에도 급제, 양사의 요직을 두루 거쳐 좌승지에 이르렀다. 문명도 높아 유고도 있다. 묘소는 선영 간좌에 있다.
상로(商輅) 1720∼1776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상로(商輅) [1720(숙종 46)∼1776(영조 52)]
자는 태소(太素), 대군의 13대손이며 교리 의중(毅中)의 아들이다. 진사시를 거쳐 사복시 첨정이 되어 1773년(영조 49) 정시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좌승지를 역임하였다.
묘소는 광주 성실면 오리 선영 묘좌에 있다.
자는 태소(太素), 대군의 13대손이며 교리 의중(毅中)의 아들이다. 진사시를 거쳐 사복시 첨정이 되어 1773년(영조 49) 정시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좌승지를 역임하였다.
묘소는 광주 성실면 오리 선영 묘좌에 있다.
상목(商穆) 1720∼1761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상목(商穆) [1720(숙종 46)∼1761(영조 37)]
자는 경사(敬思), 호는 평호(萍湖). 대군의 13대손이며 동지중추부사 황중(黃中)의 아들이다. 대학자로 문장이 뛰어났으며 특히 성리학 연구가 깊어 김종후(金鍾厚) · 윤면중(尹冕重)과 같이 성리학의 대가로 일컬어졌다.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심하며 일생을 마쳤다.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 : 1702∼1772)이 항상 이르기를 “평호는 기질이 순미하고 용력이 정확하여 내가 사람을 많이 보았어도 평호같은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고 평하였다. 유고로 <평호집(萍湖集)>이 있다.
묘소는 광주 신원 내곡 간좌에 있다.
자는 경사(敬思), 호는 평호(萍湖). 대군의 13대손이며 동지중추부사 황중(黃中)의 아들이다. 대학자로 문장이 뛰어났으며 특히 성리학 연구가 깊어 김종후(金鍾厚) · 윤면중(尹冕重)과 같이 성리학의 대가로 일컬어졌다.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심하며 일생을 마쳤다.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 : 1702∼1772)이 항상 이르기를 “평호는 기질이 순미하고 용력이 정확하여 내가 사람을 많이 보았어도 평호같은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고 평하였다. 유고로 <평호집(萍湖集)>이 있다.
묘소는 광주 신원 내곡 간좌에 있다.
상열(尙說) 1660∼1732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자는 여우(汝雨), 대군의 9대손이며 증 좌승지 동환(東桓)의 아들이다.
진사시에 합격하고 1691년(숙종 17)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청환직을 거쳐 사헌부 장령 · 세자시강원 필선을 역임하고 문집도 있다.
진사시에 합격하고 1691년(숙종 17)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청환직을 거쳐 사헌부 장령 · 세자시강원 필선을 역임하고 문집도 있다.
상태(尙泰) 1662∼1719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자는 대래(大來), 대군의 9대손이며 동부승지 동로(東老)의 아들이다. 학자로서 문명이 높았다. 문집을 남기고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석신(碩臣) 1610∼1688 파명:광평대군(廣平大君)
  자는 대임(大任), 대군의 8대손이며 현감 광익의 계자로 생부는 진사 정익(庭翼)이다.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 1563∼1633)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봉사(奉事)를 역임하였다. 유고로 <가례집해(家禮集解)>가 있다.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 1563∼1633)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봉사(奉事)를 역임하였다. 유고로 <가례집해(家禮集解)>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