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군파 현조약기에는 총 125건의 인물자료가 존재합니다.

운해(運海) 1710∼1741    파명:덕천군(德泉君)
  자는 운거(雲擧) 또는 붕거(鵬擧), 함풍군의 8대손이며 현상(鉉相)의 아들이다. 학덕으로 남대(南臺)가 되고 1740년(영조 16) 증광별시 병과에 급제, 필선(弼善)·지평을 역임했고 통훈대부가 되었다. 세자 시강원 · 춘추관 편수관도 지냈다.
 배위는 원주원씨 준석(俊錫)의 딸이다.
 묘소는 양주군 고주면 광우지에 있다.
원(瑗) 1543∼1628    파명:덕천군(德泉君)
  자는 백옥(伯玉), 호는 동고(東皐). 학성군의 증손이며 수남(壽男)의 장남이다. 진사로서 1583년(선조 16)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 승문원(承文院) 부제조 · 경기감사 · 형조참판 · 한성부 좌윤 등을 지냈다. 광해군 때는 폐모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면천(沔川)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1627년(인조 5)에 청(淸)나라와 화친하여 동맹하는 것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척화(斥和)에 앞장서기도 했다.
 배위는 연안김씨 직장(直長) 인지(麟趾)의 딸이다.
 묘소는 충남 당진군 송악면 봉교리 후록 자좌에 있다.
원형(元衡) 1695∼1757    파명:덕천군(德泉君)
 원형(元衡) [1695(숙종 21)∼1757(영조 33)]
 자는 평숙(平叔), 호는 고재(孤齋). 유저(有?)의 장남이다.
 1721년(경종 1) 생원시에 급제했다. 관청에서 일을 보는데 아버지가 병이 들었다 하므로 밤에 귀가하는데 호랑이를 만났다. 공은 조금도 두려운 빛이 없이 “너는 효도로운 짐승으로서 아버지가 병이 들어 급히 돌아가는 나를 어찌 잡아 먹을 수 있으냐?” 하니 호랑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 갔다 한다. 그래서 세상에서 공의 아버지·할아버지와 함께 삼세효행(三世孝行)의 집안이라 칭한다.
 배위는 영덕정씨 심(諶)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벽제동 학령산에 있다.
유간(惟侃) 1550∼1634    파명:덕천군(德泉君)
  자는 강중(剛中), 호는 우곡(愚谷). 함풍군의 손자이며 수광의 3남이다. 생원으로서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천거로 사산감역(四山監役), 제천(堤川)현감을 거쳐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만년에는 연지노인회(蓮池老人會)로 역학을 강론하고 시가를 즐겼으며, 차남의 현달(顯達)로 인하여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임금이 황감(黃柑) 10개를 하사하였다. 벗으로는 이호민(李好閔) · 서성(徐픸) · 강곤(姜툯) · 이항복(李恒福) 등이 있고 막역한 벗들과 함께 남대문 밖 연지계 십이노회(蓮池첇十二老會)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만석군(萬石君)\'이라 불렀으며 <우곡일기(愚谷日記)> 10권을 남겼다. 유훈은 `사치를 금함(禁奢侈)\'.
 배위는 증 정경부인 개성고씨로 한량(漢良)의 딸이다.
 묘소는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 산57의 10 오좌에 있다.
유서(惟恕) 1545∼1627    파명:덕천군(德泉君)
  자는 사추(士推), 함풍군의 손자이고 수광(秀光)의 차남이다. 생원과 무과에 합격, 문무를 겸전하였고 판관을 거쳐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배위는 경주김씨 무(?)의 딸이다.
 묘소는 함풍군 국내(局內)에 있다.
유저(有?) 1618∼1679    파명:덕천군(德泉君)
 유저(有?) [1618(광해군 10)∼1679(숙종 5)]
 자는 거경(巨卿), 호는 위암(渭庵). 운수군의 6대손이며 강진부수의 현손이고 극부의 아들이다.
 효심이 깊어 부모상을 당하여 여묘살이 3년에 향화가 끊이지 않으니 이산림처사(李山林處士)라 불렸다. 벼슬은 와서별제(瓦署別提)를 지냈다.
 배위는 별제 경주최씨 웅진(應軫)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고양시 벽제동 학령산 유좌이다.
유정(惟貞) 1520∼1579    파명:덕천군(德泉君)
  덕천군 5대손, 상산군(商山君)의 장손. 전성부원군 준(準)의 아버지. 진사에 급제하여 세마 · 현감을 지냈다. 아들의 출세로 영의정과 완계부원군(完溪府院君)에 추증되었다.
 배위는 안동김씨 인서(麟瑞)의 딸이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남면 신산리 사리봉하 자좌이다.
은찬(殷贊) 1889∼1945    파명:덕천군(德泉君)
  자는 여해(汝海), 탁(퀺)의 8대손이며 덕천군 16대손 석하(錫夏)의 아들이다. 갑오개혁 후 강원 · 경북 지방 의병장으로 일본군 다수를 섬멸하는 큰 공을 세웠다.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용산 일본군영에서 교수형을 당하였다. 1961년 3월 1일 건국훈장을 받았다.
 배위는 밀양박씨 치교(致敎)의 딸이다.
 묘소는 국립묘지 애국지사 선열 역내에 있다
응(凝) 1535∼?    파명:덕천군(德泉君)
  상산군의 증손이며 유정(惟貞)의 장남. 준(準)의 형이다. 사마 양장(司馬兩場)에 급제하고 1566년(명종 21) 별시 병과에 급제했다. 벼슬은 호조정랑을 거쳐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배위는 현감 풍천노씨 인(縯)의 딸이다.
 묘소는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 산54의 9에 있다.
이경(쳶慶) 1549∼ ?    파명:덕천군(德泉君)
 이경(쳶慶) [1549(명종 4)∼ ?]
 상산군의 차남인 구산군의 장남으로 자는 응선(應善)이며 호는 취곡(鷲谷)이다. 진사로서 1600년(선조 33)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 승지 · 판결사(判決事)를 역임했다. 광해군 때 익사공신(翊社功臣)이 되어 완숭군(完崇君)에 봉해졌다.
 배위는 한양조씨 응기(應箕)의 딸과 홍인록(洪仁祿)의 딸이다.